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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Oct 02. 2020

명절

one  of the family

Frederick George Cotman, <one of the family>

대가족 가정에서 자랐다. 우리집 가족은 모두 여덟.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 그리고 남동생 둘. 보기 드믄 4대가 함께 사는 가족이었다. 4대가 함께 사는 집은 우리집 말고는 난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에겐 그저 처음부터 그랬던, 주어진 환경이었다.

시골에서 자랐다. 한 학년이 두 반 밖에 없는 작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인근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을 정도로 아이들이 별로 없는 농촌 마을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만 집에 덜렁 던져두고 논 한 가운데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그길을 쭉 따라가다보면 나오던 언덕의 위 목장, 목장 앞 언덕에서 양손을 놓고 하늘을 날듯 자전거를 탈때의 쾌감, 꺄아- 

한참을 놀다 들어와서 먹는 저녁밥은 늘 꿀맛이었다.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된장, 간장, 두부, 김치까지 엄마와 할머니의 손을 거치지 않은 식재료는 없었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자식처럼 돌보며 가꾸신 햇볕 맛이 나던 채소들. 

내 유년시절은 참 고요했고, 별것 없었고, 느렸고, 조용했다. 시간의 흐름대로 찍어 놓은 시골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던 시간들.  

그때의 고요에 대한 기억이 마음이 복잡한 날엔 위로가 된다. 그때의 별것없음이 지금에 와선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함으로 느껴진다. 엄마 아빠에게 내가 받은것 중 가장 큰 건 아마 조용한 유년시절의 기억을 아닐까?


영국 화가 프레드릭 조지 코트만의 한 가족에 대한 그림, 우리 가족을 저녁 식사 시간을 닮았다. 방금까지도 밖에서 놀고 있었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남자아이는 허겁지겁 식사하기 바쁘고, 할머니는 손자 손녀 먹을 거리를 조금이라도 준비하시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그림에 보이지 않는 테이블 맡은 편엔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있을 같은 분위기. 먹을 거리가 풍족하진 않지만 화목해보인다. 창밖에 있는 먹이까지 살뜰이 챙기는 엄마와 소녀의 다정한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는 예쁜 그림.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도 식사 자리가 커다란 보물이 되겠지, 지금은 모르지만 조금 크면 알게 거야. 가족과 보냈던 평범했던 시간들이 나중에 가장 힘이 된다는 걸. 내가 그랬듯.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나중에, 나중에, 어른이 되서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 가만히 꺼내볼 수 있는 작고 고요하지만 소중한 기억들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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