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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Aug 26. 2020

거울 속 내가 낯선 순간

<Before the Mirror, Edouard Manet(1876)>

오랜만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인스타그램 계정과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가보았어요. 만4년 정도를 로그인도 해보지 않고 지냈던 것 같아요. 주로 일할 때 알게 된 지인들, 거래처분들, 회사분들, 저자분들이 팔로잉되어 있어서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제 자신을 보여주는 것도, 일선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선후배 동료의 일상을 보는 것도 싫어서, 아마도 추정컨대 일에 대한 미련이 커서 더이상 그 계정에 들어가지 않았던 거 같아요.


문득 궁금했어요. 아이 엄마로 살기 전에 나는 어땠나. 진짜 기억이 안나기도 했고요.

간신히 비밀번호를 찾아내 로그인 성공. 


분명 나인데, 내가 맞는데 참 낯설었어요. 외모도 많이 달라진 거 같고, 그때 썼던 글들, 그때의 작은 생각들이 다 낯설었어요. 분명 내가 맞는데 말이에요. 낯선 이의 계정을 보듯 한참을 봤어요. 추억에 잠기기 보다는 좀 멍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한때는 친했지만 졸업하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여고 동창생을 20년 만에 만난다면 이런 느낌일까? 반갑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서 말없이 서로 한참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에두아르 마네, 거울 앞에서 

마네가 그린 <거울 앞에서>라는 그림이에요. 거울을 보는 여인의 뒷모습, 거울 속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여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확인할 순 없지만 뒷모습이 쓸쓸해보여요. 화려한 차림과 단정한 머리 모양으로 보아 외출 전인 거 같은데, 자신의 모습이 어쩐지 낯선 가봐요. 오늘의 저처럼 말이에요. 외출 전 잠깐 거울로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모습이라기 보단, 자기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들어요. 


베르트 모리조, <거울> 



베르트 모리조의 <거울>이라는 그림입니다. 마네의 그림보다 훨씬 젊은 여성을 같아요. 훨씬 생기를 띤 느낌이지만 표정이 밝지만은 않아요. 옷매무새를 부지런히 살피는 느낌이라기 보단, 거울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겨 있는 거 같아요.



에드가르 드가, <거울 앞의 장토부인>

드가의 그림 속 장토 부인도 한껏 외출준비를 하고 거울을 봅니다. 쉽게 자신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 같아요.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이지만 즐거워 보이지 않네요. 거울 속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을 보듯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가끔 그렇죠. 그림 속 여인들처럼 우리도 거울 속 나를 저런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어요. '나'라는 사람이 참 낯설 때 말이에요. 아이를 키우느라 아이 크는 것에 집중하느라 나의 모습이 변해가는 것은 생각지 못하죠. 그러다 문득 만난 거울 속 나에게서 느끼는 낮섦. 아이가 태어난 후 내가 집중하는 것들이 많이 바뀌죠. 견고한 성 같았던 나의 가치관들이 조금씩 변해감을 느껴요. 이전과는 다르게 사고하고 우선순위가 전과 다르게 배치되기 시작하죠.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해지고,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지기도 해요. 예전 계정을 로그아웃하고 지내온 만 4년은 많은 것이 바뀌고 재배치되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낯설었나봐요. 


계정을 다시 로그아웃하며 혼자 피식 웃었어요. 그때의 열정이, 젊음이, 깨어 있음이 그립기도 했지만, 그땐 그랬지, 그땐 그랬고, 난 지금을 살자! 이런 기분이랄까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서 쉬이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여인들도 아마 이내 멍했던 정신이 들고 각자의 외출 장소로 나섰겠죠? 그리고 거울 앞에서 느꼈던 그 생경함과 쓸쓸함은 금새 잊고 각자의 볼 일을 보고, 반가운 지인을 만나고,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겠죠? 그리고 거울은 볼새도 볼일도 없는 바쁜 엄마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거예요. 우리가 그렇듯이.


오랜만에 만난 예전의 나는 낯설지만 반갑기도 했어요. 이제 가끔, 가끔은 그 계정에 로그인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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