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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mroom Jun 23. 2023

완전한 독립

불행하고 불완전했던 유년기로부터

비혼인지 불혼인지 아직 알 수 없는 나의 혼란스러운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는

얼마 전 올해 팔순잔치를 앞둔 엄마와 별일 아닌 것으로 크게 싸우고

한 달째 연락을 주고받지 않고 있다.


유교적 관점에서는 세상이상한 불효녀인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평온한 것일까?

엄마와 거리가 생겨버리니 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지금이 어쩌면 완전한 독립의 시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엄마와 거리를 두고 나니 행복한지 생각해 보니

이제야 나는 엄마의 불행에 대한 막연한 책임감과 의무감에서 벗어난 게 아닐까 싶다.


엄마는 38살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젊은 나이 폐렴으로 혼기를 놓치셨다고 한다.

44년생이니 그때 당시로도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불행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빠는 이미 첫 번째 결혼을 했었고 엄마와 재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첫 번째 부인은 아버지의 술, 폭력, 도박 등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 첫째 부인의 자녀들은 남겨져 있었던 상태였다.


엄마는 그래도 그때는 아빠를 진심으로 좋아하거나 사랑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의 고쳐지지 않는 그 모습들에 실망했고

그럼에도 주변의 반대로 했던 결혼,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나 때문 인지

또는 이혼한 이후 엄마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인지

2013년 7월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수없이 처절하게 싸우면서도

절대 이혼하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는 정말 서로 주먹을 써가며 싸웠다.

물론 아빠가 일방적으로 우세하긴 했지만

어느 날은 엄마가 식칼을 들고 싸우는 걸 본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은 내가 유치원에서 배운 '112 신고를 하면 경찰이 도와준다'라는 것을 기억해냈고

실천해 보려 '112'에 전화를 걸었었다.

아마도 나는 그때 수화기 너머로 전화를 받은 경찰아저씨에게 울면서 '엄마랑 아빠가 싸워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던 거 같다. 그런데 내 표현이 너무 부족해서였는지 경찰아저씨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다. 괜찮아질 거야'라면서 끊었던 기억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나에게 아빠는 가족의 적, 공공의 적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내가 어린 나이 정성스럽게 모아둔 저금통의 동전을 모두 가져가버린 존재

엄마를 바닥에 눕혀 때리는 모습은 공포였고

어떤 날은 엄마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몇 날 며칠을 엄마 없이 아빠와 지내야 하는 날 도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아빠와의 정서적 거리감은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좁혀지지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중학교 때쯤에는 어떤 아줌마과 5살쯤 된 여자아이와 함께 우리 집에 왔고

그 아이가 우리 아빠의 아이라면서 한동안 같이 산 적도 있었다.

아빠는 집에 없었고 엄마와 나, 아줌마와 그 여자아이..

이렇게 넷이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잤다.

(다행히 그 아이는 나의 이복동생이 아니었고 그 아줌마는 아빠와 잠시 썸씽이 있었던 분이었다고 한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평범하지 않았던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이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좀 굵직한 특이점이 온 유년의 순간들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늘 '너 때문에 이혼을 못하고 산다'거나

나한테 화낼 일이 있을 때는 '남편 복이 없으면 자식복이 없다더니 너도 아빠랑 똑같구나'라며

나를 비난할 때도 있었다. 어떨 때는 '너도 나중에 너랑 똑같은 자식을 낳아봐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마 이런 종류의 표현들을 상황에 따라 바꿔가며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불과 몇 년 전 까지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요즘말로 참 다양한 '가스라이팅'의 표현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엄마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에게 부모는 의지해야 할 대상이 아닌 내가 책임져야 할 대상 또는

아빠로부터 엄마를 지켜내야 하는 어떤 책임과 의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내가 20대 중반이었을 때

아빠가 술을 많이 마시고 엉엉 울던 날이 기억이 난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아빠의 행동들이 다 정당화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엄마와 아빠, 부부간의 문제에 대해 내가 너무 엄마 편에서만

모든 것을 바라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와 아빠는 결국 성격차이도 있고

대화나 소통의 부족이 심각했는데 그건 어느 일방의 문제는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빠도 참 외로웠겠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늘 엄마 편이었으니 아빠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가장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전부였던 그리고 내가 지키고 책임져야 할 것 같던 엄마의 존재에 대해

요즘 나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엄마는 나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

나는 엄마에게 어떤 존재일까?


나는 엄마와 나의 관계가 전혀 건강하지도 올바르지도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엄마의 보호자도 책임자도 아닌 엄마의 딸인데

나는 왜 엄마를 늘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을까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나와 의견이 다른 엄마를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화를 내도 받아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 전 우리 집에 놀러왔던

엄마는 며칠 전 화가 나 나에게 '나쁜 년'을 외치며 떠나셨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 연락 없이 지내고 있다.

평화롭게 안온하게


가끔 '지금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효심을 발휘하여

엄마의 기분을 풀어드려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그 어떤 마음의 죄책감도 불안감도 들지 않았다.


지금은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잠시 이 고요함을 유지하고자 한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기 위한

진공의 상태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완전한 독립적 존재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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