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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pr 17. 2016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더 사랑하는 쪽이 더 강하다

때로는 주간 1,2위를 다투는 메이저 영화가 어떤 생각할 거리를 주거나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할 때가 있다. 때마침 적절하게 재개봉한 영화. 일본 영화 특유의 색감과 느낌이 마음을 착 가라앉힌다.


시작부터 알고있었다. 영화의 모든 분위기와 대사들이 지나버린 추억을 말하는 듯 했다. 이들의 사랑이 해피엔딩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영화의 중반부로 갈 수록 조제와 츠네오의 이별이 해피엔딩이라는 역설적인 생각이 들었다. 남주와 여주가 헤어지는 결말은 절대로 새드엔딩이라는 고정관념이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츠네오의 시작은 연민과 호기심이었을지 모른다. 신체의 불편함이 정서와 가치관을 지배하지 않는, 유모차에 구겨들어가 작은 틈으로 보는 세상이 전부이지만 똑똑하고 당찬, 의자에서 멋지게 다이빙하는 이 작은 여자에 대한 신비로움이 사랑이 됐을거다. 그런 츠네오를 조제는 진심으로 사랑했다. 츠네오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주변에 많은 커플들이 시작이야 어떻든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진심이 '거기까지'가 될 때 헤어지게되니까. 오히려 조제의 땡깡과 어수룩함, 모든 것이 신기한 그녀의 순수함이 버거워지는 그 순간에 연민과 동정으로 그녀곁에 억지로 남아있으려 하지 않는 츠네오가 진짜 사랑을 알고, 진짜 사랑을 해본 사람인게 아닐까.


별로 외롭지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언제나 더 사랑하는 쪽이 손해라고 한다. 미친듯이 슬픈 이별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 쉽게 나오는 말이라 생각한다. 힘든 이별을 겪고 그 속에서 헤어나와 본 사람은 안다. 더 사랑하고 더 매달려서 그 어떤 미련도 없는 쪽의 이별이 더 태연하다는 것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망치로 마음을 마구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두 사람이 이별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태연한 모습. 조제가 츠네오의 외출을 배웅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작별선물'이라며 내미는 성인잡지 마저 이별장면에 어울리지 않는다. 츠네오 역시 담담하고 짧게 선물을 받아든다. 그러나 츠네오가 무너진다. 데이트 파트너를 길거리에 세워둔 채 길 한가운데서 펑펑 우는 그를 보며 사랑이 끝난 자리에 밀려오는 공허함과, 추억을 기억으로 간직해야 하는 그 아픈 순간이 저릿하게 전해온다.


이별의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아니, 사실은 하나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헤어지고도 친구로 지내는 커플은 두 가지 경우라고 한다. 정말 사랑한적이 없거나, 둘 중 한명이 잊지 못했거나. 츠네오가 길거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던 이유. 다시는 조제를 만날 일이 없어서다. 정말 사랑했고, 더이상 마음이 남아있지 않아서.


조제는 잘 산다. 혼자 밥을 해먹고 휠체어를 타고 장도 보러 다닌다. 가슴을 만지게 해주고 쓰레기도 버려달라 부탁하겠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온 마음을 다해 츠네오를 사랑했고 그 어떤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보인다. 더 사랑하는 쪽이 더 강하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언젠가 그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될거야.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는 또다시 고독하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거기엔 또다시 흘러버린 1년이라는 세월이 있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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