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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Sep 12. 2023

똑똑해서 배척받은 여자

여성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

나는 카렌 호나이의 <우리 시대는 신경증일까?>가 분명히 연구 막바지의 저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완성도 있고 분명한 어조, 쉬운 문체로 써 내려간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1937년 출판이고 카렌 호나이가 처음으로 주목받은 책이었다. 이전에는 논문집이 있었다. 정신 분석학 책을 이렇게 빨려 들어가듯 읽은 적이 없어서 (동의가 안 되거나 난해하거나 재미가 있어도 읽기 힘들거나...)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구할 수 있는 책은 모두 주문하고 옛날에 나온 카렌 호나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책으로 넘어갔다.


한 장씩 넘어가면서 뭔가 마음이 찌르르하고 몇 년 동안 느끼지 못한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카렌 호나이는 전사였다. 책에서 이미 그걸 느꼈지만 당시의 소심한 남자 학자들이 얼마나 지질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설마 여성이었던 그녀가 책 밖의 삶에서도 그토록 용감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카렌 호나이는 프로이트가 말년일 때 따라서 아직 프로이트 학파의 위세가 거의 종교에 가까운 경직성으로 학생들을 휘어잡고 있을 때 이미 그의 이론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관점을 내놓고 학문적 완성도를 이룬 사람이다.


 1941년 4월 뉴욕 정신 분석 협회에서 카렌을 지도교수에서 강사로 강등시키고 신입생을 가르치지 못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카렌의 진보적 사고에 '오염'되지 않도록 공식적으로 공격했을 때 이전에 어느 누구도 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회의장을 걸어 나와 버린 것이다. 당시에 카렌을 공식적으로 지지한 사람은 60명 중 7명이었고 뒤를 이어 따라 나온 사람은 5명이었다. 29명이 카렌의 편이었지만 대놓고 학회에 맞서지는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그런 시대다.


그들은 바로 근처 술집으로 갔다. 패배감에 빠져 분노의 술잔을 기울였을 줄 알았는데 축배를 들고 자유를 느끼며 크게 웃으며 거리를 활보했다고 한다. 이날이 바로 처음으로 남성중심적이고 내재적이며 욕망과 충동으로만 인간 심리를 이해하던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분파가 생겨난 날이다. 카렌을 지지한 클라라 톰슨은 그날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날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목을 읽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런 언니들이 있었기에 여성 심리는  남근에 눌려 질식할 운명을 벗어난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그렇듯 당시의 프로이트 학파는 학자이기보다 정치가적인 태도로 자기들의 입지를 다지려고 했고 학생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교육하려고 들었다. 협박하고 경고하며 오직 프로이트의 이론만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카렌은 어려서도 살면서도 결코 무난하고 순탄하게 산 사람이 아니었고 내내 질시와 오해 질타와 싸워야 했다.


그동안 내가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모순과 그 모순 저변에 있는 숨겨진 욕망 누가 봐도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 주는 만족감의 근원, 그런 행동의 원인과 그걸 다루는 사람들이 알아야만 하는 극단적 불안 등에 대해서 카렌 호나이는 조목조목 밝혀냈다. 통찰력이 대단하다. 이분의 책을 읽는 건 말이 통하는 사람과 피곤한 줄 모르고 대화를 하는 느낌이다.


카렌 호나이는 신경증(노이로제)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며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그것을 극복 가능하게 하고 분석가와 같은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모든 것은 프로이트와 정 반대되는 견해다. 분석가는 듣기만 하고 침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이런 견해를 많이 따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그녀만큼 임상적으로 학술적으로 교육적으로  전문적인 박사는 흔치 않았다. 그녀에겐 당연히 그녀만큼이나 용감한 여성 동료들이 있었다. 한 장 한 장이 너무 재밌어서 아깝고 조바심이 날 정도다. 우리가 지금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녀의 손을 거쳤다. 독서 토론과 적극적인 질문과 논박으로 자기 발견을 추구하는 나에게 그녀는 너무나 중요한 스승이 됐다.


카렌 호나이는 잔인할 정도로 무서운 아빠와 온건하고 자신을 지지해 주는 엄마 사이에서 자랐고 지능과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의 무시 속에 컸다. 결혼 후 자기가 주장하는 학문적 방향으로 인해 이혼했고 두 아이를 키우며 일해야 하는 상황을 겪었기에 누구보다도 여성의 심리와 고통을 깊이 이해했다. 카렌 호나이의 삶을 들여다보며 카렌 암스트롱의 삶을 들여다볼 때 느꼈던 동질감이 느껴졌다. 가정환경과 느낀 감정들이 비슷해서 또 감동.


경직되고 폭력적인 조직의 거대한 힘에 맞선 지적인 여성들의 에너지에 존경심이 인다. 도대체 왜 그녀는 내가 읽었던 그 쓸데없는 위인전 사이에 없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삶에 대해서 그 업적과 용기에 대해서 알면 좋겠다. 반짝거리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즐겁고 대중적이고 확실한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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