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옹 Feb 25. 2024

문과 엄마의 이과 시험 경험담


내가 그간 글을 남기지 못했던 것은

LAB 시험과 이론 시험과

물리 이론 시험이 2주에 걸쳐

연달아 왔기 때문이다.


멘붕이었다. 


한국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심지어 나는 이과였는데

분명히 머릿속 어딘가 물리2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화학의 내용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어찌 이렇게 생경할 수가 있는지??


난 정말 어떤 학창 시절은 보내온 거니?ㅠㅠ



생소한 LAB 시험


한국에서 소소한 실험은 어린 시절 해본 경험이 있지만

내가 어릴 때는 그 실험이 성적에 반영되지는 않아서

실험 시험이라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캐나다는 고등학교라도 LAB을 참 많이 한다.

Pre-Lab 세 번, Demo-Lab 두 번 을 걸쳐 

퐈이널리 실험 시험을 치렀는데


놀라운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내가 실험을 구상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대충 상황을 읽고

( 이 상황도 영어로 되어 있고, 어떤 전문 용어들이라 이해가 잘 안 된다....)

  

실험에 대한 가설을 알아서 세우고

실험에 들어가야 하는 준비물

(하나하나 내가 생각해서 적어야 한다, 빠지면 감점)

실험 과정을 다 내가 설계해야 한다.


한국이라도 어리둥절할 텐데 

영어로, 용어를 아무리 외워도 

cylinder 이랑 Flask 왜 다르게 사용할까 혼미하고

게다가 과정까지 적으려니 참 힘들었다.


예를 들자면 

공기를 주입한 주사기를 물에 담긴 비커에 완전히 잠기게 하되

온도계는 그 주사기의 눈금 반까지 넣어서 온도를 재야 한다.


뭐 이런 묘사가 단순한데도 나한테는 어려웠다.

난 바보니까ㅠㅠ 

이 눈금의 끝을 뭐라고 해야 할까?


Cylinder는 그걸 Miniscus라고 부르는데 

그럼 주사기의 그 끝을 뭐라고 해야 하지?

뭐 이런 것들......



물리 이론 시험


낙제를 예상했던 물리 실험 시험은

40점 만점에 33점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우리 집은 아시안 가정으로 95점 이하는 F라고

내가 아이들에게 늘 농담 삼아 말하는데

그런 말할 자격이 되는 엄마가 못되구나!

이론 잘 받아도 이미 95점 아래야 하아...


얘들아, 엄마도 못하면서 잘하라고

까불어서 미안해!


그래도 나는 20점 정도 예상했는데

33점이 어디냐.......


물리 이론 시험은 거의 울면서 준비했다.

물리의 특징은 공식은 

차~~~~~~~~~암 단순하다.

다만, 그 공식이 어떤 상황에 어떻게 활용되는지가

관건인 거 같다.


또한 여기서도 영어의 문제가....

예를 들면 Angle of depression 이면 

아래쪽 각인데, 그걸 몰라서

Angle of elevation으로 위쪽 각으로

벡터를 계산하면 반대로 문제를 풀고 앉아 있....


내가 여기 Science 1 과정부터 차근차근 밟은 게 아니라

이미 한국에서 학위자라 필요한 과목만 듣는지라

영어 용어가 약하고 모래 위 성 같은 얄팍한 지식으로

학교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


서술문제 3문제가 배점 40점

나머지 20 문제가 배점 20점


여기 시험은 늘 이런 식이다.

word problem이라고 해서

진짜 letter 한 장 분량 가득 상황 묘사이고


그 상황에서 필요한 공식 대입하고 

문제 풀어야 하는데 또 모르는 단어 나오면

중요한 것도 아닌데 거기 꽂혀서 당황하고....


이 문제들이 40점이고

나머지 잔챙이 문제들은 10개나 되는데 20점이다.

서술 문제가 정말 정말 중요하다.


영어의 벽을 느꼈다.


공학도인 남편이 바보인 나의 멱살을 잡고

공부시켜줘서 이론 시험은 생각만큼

절망적인 수준으로 치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물리는 영어 문제들이 깔끔해서

수학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문제가 이해 안 되는 화학 이론 시험


정말 디재스터는 화학이었다.

사실 물리는 도대체가 이해가 안돼서

벼락치기를 했는데

오히려 집중력이 좋아 

시험까지 준비가 잘 된 시험이고


화학은 평소에 매일 꾸준히 공부해서

그냥 잘 되겠지 생각했는데

시험에서 완전히 당황했다.........




화학 역시 word problem 문제가

3문제인데 이게 너무너무너무 상황 묘사가 길고

영어가 아예 아예 처음 보는 단어들이라

상황이 이해가 안 되어서 진짜 너무 당황해 버렸다


머리가 마비가 되어버리고

진짜 너무 당황해서 패닉이 왔다.


딱 세 문제이고 그게 배점이 40점인데

도대체가 뭔 상황인지 이해를 못 하니까

어떤 법칙을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오히려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물리보다

시험을 더 망치고 나왔다.


영어의 벽을 느끼고 좌절했지만

내가 여기서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만약 캐네디언이 한국서 4년 살고

고등학교 가서 원자 분자 화학반응 연쇄작용 뭐 이런 거

한국어 서술로 시험 친다고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뭐 이렇게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처음이니까, 다음에는 더 잘할 거야!



남편은 나의 시험 기간 동안 휴가였는데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나 공부한다고

과일도 깎아주고

아이들 픽드롭도 다 도맡아 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팀홀튼 커피도 한잔씩 사주고

너무 고마웠다.

없었으면 더 망했을 거야ㅠㅠ



학교는 갈 수 있을까?


요즘 학교 점수 커트라인이 높아져서

내 점수로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된다.


요즘은 유튜브 강의 같은 게 잘 되어 있어

미리 공부를 하면 좋겠지만

내가 독립된 나로서의 나뿐만 아니라

피아노맘, 태권도맘, 하키맘, 펜싱맘, 

스윔맘, 사립학교맘 등등

온갖 보직이 많은 관계로 여의치가 않네. 



엄마 시험기간의 장점


내가 공부하면서의 장점은


1.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신경 끄기 가능.


더 이상 아이들의 성적에 나의 인생을 갈아 넣지 않는다.

그냥 '알아서 해라'가 머리로는 되었는데 

실행이 어려웠다. 

이제는 내가 아예 시간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된다.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참 좋은 거 같다.


얘들도 어린아이들이지만 스스로의 생각과

스스로 행동해야 하는데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쉽지 않으므로.


신경 끄기 굿굿!


2. 아이들 마음을 100% 이해


나는 내가 모의 문제도 다 만들어주고

미리 연습도 많이 했는데 왜 100 점을 못 받는지

너무 의아했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다 떠먹여 줬잖니??


근데 내가 시험을 쳐보니

실력만큼 중요한 것도 멘털이더라.

멘털이 실력인 건가?


내가 충분히 공부하고 이해했음에도

당황하면 그게 어떤 과정에서 좌라라 무너지기 시작.


엉뚱한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데,

가끔 어이없게 시험 쳐오는 아이들 마음이

100% 이해되기 시작했다.


얘들아, 우리 같이 멘탈을 잡아보자



쨋든 영어의 벽은 높았다.

무슨 자신감으로 이민을 왔는지, 하아.


이민 1세대 여러분들, 다 같이 화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문과 엄마의 이과 Lab 도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