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환멸
그런 사람이 있다.
왜 자신이 생각하는 걸 이야기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고
기록하고 싶고
내가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인지라
블로그를 시작했었다.
벌써 15년이 되었다.
이웃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할 수 없는 블로그에
정말 생생하고 울고 웃었던 일들
많이 기록했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글을 쓰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익명의 공간이었고
공개되는 글을 쓰지만 오롯이 나 스스로를
기록하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시대상도 지금과 다르게
순수한 사람들이 많아
얼굴은 모르지만 서로 응원했던
사람들이 있고,
더불어 힘을 냈던 거 같다.
다소 부끄러운 나의 밑바닥도
글로 적기도 하고,
서로 비슷한 면을 가진 사람끼리
어떻게 하면 더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
순기능을 하기도 했다.
브런치가 시작되고
여기서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가 돌 무렵이었나?
연년생을 낳고 나서부터였던가?
그때의 육아우울증의 기록이 이곳에 ㅋㅋ
안쓰러워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응원의 글도 많았고
그런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었던 거 같다.
사실 당시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편이 나의 블로그를 회사 사람에게 알려줬고
그분들이 블로그에 글을 보게 되면서
나의 블로그는 거의 끝이 난 거 같다.
아이들 육아용품이며 육아 일기를 기록했는데
내가 사는 거, 하는 거
손쉽게 다 쉽게 따라 하면서 고마워하기는커녕
뭐 저렇게 하냐며 뒷이야기도 잘하더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꽃사슴은
함부로 앞에 나서 나대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나는 싯다르타나 어떠한 종교지도자
혹은 대단한 철학자가 아니다.
글을 읽다 보면 재수 없을 수도 있고,
생각이 똥 같을 수도 있고,
다시 말해 나의 인격이
본인의 기준에 못 미칠 수도 있고
미진한 나의 생각이 가짢을 수도 있다.
때로는 남들에게 뽐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서
애매하게 자랑하고 있을 때는
나도 나 스스로가 한심해진다.
근데 나를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나의 밑바닥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본인도 마찬가지 일 텐데, 판단하기 시작했다.
불쾌하면 안 보면 그만일 텐데
관음증 환자들처럼
애정 있어하는 사이도 아닌데
손쉽게 얻어지는 나의 사생활은
마다하지 않고, 제일 앞장서서 읽어대고
사람들 만나면 안주거리 삼더라.
돌려 까는 사이 면서
따라 할 수 있는 건 따라 하고
못하는 거면 어떻게든 까내려서 합리화하더라.
현 세상에서 본인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건
본인의 약점을 고이 손에 쥐어드리는 거라 하던데
나는 너무 순진했다.
어쩌다 보니 이민 와서 이 좁은 한인세계 중
딱히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게 뿜뿜 느껴지는
분들도 이웃을 추가해서 글을 읽어주시더라.
이게 마냥 순수하게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사람일까?
날 별로 좋아하지는 않으면서
관심은 왜 이렇게 많은지.
공부를 시작하면
그 나이에 무슨 공부를 시작하냐
아이가 사립학교를 다니면
사립학교 다녀봐야 자살한 애 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어릴 때 공부 잘하는 게 무슨 소용
아이가 하키를 잘하면
운동 선수 할 것도 아닌데 돈낭비 오짐
이게 정말 내가 이상해서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건가?
(물론 정말 친한 몇 명의 지인들은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몇 손가락 안에 꼽는다.)
현생이나 블로그 세상이나
서로 응원해 줄 수 있는 사이가 없다는 게
정말 내가 이상해서 이상한 사람만 주위에 있는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모르겠다.
딱히 남 사생활 관심 없고
가족들과 열심히 살아갈 뿐이고
간간히 블로그랑 브런치에 기록만 할 뿐이다.
정말 센 사람들은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안 쓰고
본인 할 일만 한다고
나에게 말한다.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나도 왜 당당하게
무시를 못하지? 생각했는데
내가 처한 특수성에 기인하는 거 같다.
새로운 문화와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
외롭기 십상이고
모든 길이 그렇겠지만
생각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내가 살아서 익숙한 환경이면
그려지는 시물레이션이라도 있는데
이곳은 살아보지 않았고
살아본 부모님 세대가 있는 게 아니라서
의연한척해도 불안하다.
그런 불안감은 외로움을 불러오고
그 외로움은 사람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 거 같다.
또 한 가지는 태어나기를 초식동물로 태어났다.
아이를 키우며 학교 생활을 보면
인간사도 명백한 약육강식의 세계더라.
타고나기를 순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고
사회는 그걸 기가 막히게 감지해서 잘 밟아주더라.
어린애들도 예외가 없더라.
이게 오늘날은 더 노골적인 거 같고
한국은 그런 친구들을 말리던 의협심 강한 아이
한두 명쯤은 있었던 거 같은데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그런 애가 단 한 명도 없더라.
세상이 변한 건지
아이 학교가 구린건지.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사람의 본성을 진즉에 알고
알아서 말 조심하고 처신했을 거 같다.
글 같은 것도 남기지 않아
본인이 상처받을 일도 없었겠다.
부족한 내 탓이다.
글을 쓰면서 멋진 척, 의연한 척
읽고 나면 참 이 사람 멋지다, 태도를 배우고 싶다
이런 글을 쓰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난 아직 그런 사람이 못된다.
그런 척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해서 꽤 오랫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
멋진 척하면 좀 돌려 까기 덜할 텐데
언제나 사람들에게
쉽게 보이는 나의 생김새, 태도가
자기 경멸로 까지 이어질 뻔했지만
이런 기록을 남김으로써
이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초식인간들이 같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눈치 없는 초식인간들은 괜찮다.
본인만의 세계가 있어서.
눈치도 겁나 빠른데
이 약육강식 생태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초식 인간들은 같이 힘을 내어봅시다.
기가 약하게 태어난 게 죄는 아니잖아.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다 소멸로 향해 나아가는데
나름 이유가 있겠지.
유튜브 밈을 보니
때로는 사슴도 뱀을 질겅질겅 씹어먹더라.
우리 꽃사슴 인간들도 한 번씩 저력을 보여줍시다.
쨋든 부족한 인간이라
글 쓰는 것도 부끄럽지만
어딘가 남아있을 우리 종족들을 위해
기록을 남겨놓자.
더 좋은 세상이 오겠지
지금은 디스토피아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