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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pr 02. 2019

역사 바로 세우기

* 이 글은 오래전 쓴 글인데 우연히 최근에 모 단체 좋은 글 모음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해 탈오자만 고치고 싣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1. 반민특위의 좌절과 역사왜곡     


일본의 역사왜곡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일본의 차기 수상 후보들이라는 사람들까지 한 목소리로 일본의 역사왜곡을 편들고 나서고 있는 판국이다. 일본은 개정된 교과서에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조선인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은 "아시아 민족해방운동"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도를 한국이 무단 점령하고 있다는 내용을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었다. 아직 어린 일본 아이들에게 침략과 전쟁을 찬양하는 내용을 교과서에 실어 가르침으로써 미래의 파시즘 '전사'를 키우려는 범죄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 정부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까지 나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거세게 항의와 비난을 쏟아대고 있는데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신문마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파동을 다루고 이를 규탄하느라 요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분을 삭일 수 없는 것은 일본의 역사왜곡이 어느 틈엔가 한국사회 전반에 골고루 스며들어 우리의 역사를 자동으로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자사 이기주의를 유지, 강화하기에 급급한 우리 언론의 문제와 직결되어 그 폐해가 우리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란 언제나 과거의 기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역사가 바로 서지 않으면 현재의 역사는 물론 미래의 역사까지 잘못된 기록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따른다. 그래서 해방 직후 반민특위 활동이 좌절되면서 해방 후 최대 과제였던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역사를 가슴 아파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작업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두고두고 왜곡된 친일적 역사를 안고 살아온 게 아닌가. 

     

일제하 피압박을 당한 민중들의 대다수는 일제가 물러가자 새로운 국가 건설과 함께 민족의 정기가 반듯하게 선 자주, 민족국가의 수립을 염원했지만 당시 통치자들 대부분은 그런 시대상황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이해타산에만 열을 올렸다.      


그래서 해방 후 초대 대통령이라는 영예를 안은 이승만의 경우에도 과거사 청산 문제보다 오히려 이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 장악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의 경우에는 더욱더 과거사 청산 문제를 어렵게 한 장본인이었다는데 우리 역사의 질곡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 1897년 세운 독립문, 독립문에 사용한 <독립문>이란 글씨는 이완용의 친필이다. 당시 이완용이 아직 나라를 팔아 드시지 않았지만 이제는 독립운동가의 글씨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 근처에서 태극기가 물결치는 이유를 알 듯 모를 듯...



2.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자      


일본 만주군관학교 출신 장교인 박정희 당시 중위는 역사의 반역을 그대로 보여주는 산증거 일 수밖에 없다. 일본 제국주의의 전사인 일본 육사 출신으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기념하기 위해 200억 원의 혈세를 지출하고, 그것도 모자라 5백억 원을 국민성금으로 모아 박정희기념관을 짓겠다고 발 벗고 나서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박정희기념관건립위원회 명예회장을 맡아 친일파 선양에 나서는 판에 어떻게 우리 정부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시정하라고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박정희의 기념관을 건립하자는 논의, 아니 행동이 공공연히 전개되는 것은 일본의 역사왜곡이 자행되는 시점에서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는 친일시인의 대명사인 서정주가 죽자 그의 영전에 '금관문화훈장'을 갖다 받쳤다. 조선인 최초의 가미가제 특공대원인 마쓰이 히데오라는 어리석은 청년의 죽음을 찬양하고 뭇 조선인들이 '대동아 성전'에 목숨을 바치라고 악을 쓰던 서정주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한 것이다.  

    

또한 얼빠진 지방자치단체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친일파 선양에 여념이 없다. 특급 친일파 윤치호를 선양하기 위해 윤치호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이화여대는 여성 친일 제1호인 김활란을 기념하기 위해 김활란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대 측은 여성운동, 평화운동에 기여한 여성에게 김활란상을 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 파시즘에 적극 협력하고 조선의 청년과 여성들을 '대동아 성전'에 나서라고 외쳐댄 김활란이 여성운동과 평화운동의 선구자라는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제암리 학살지가 있는 화성시는 아예 친일 음악인 제1호인 홍난파 생가를 '성역화'하겠다고 2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현재 우리 중등학교 국사교과서 역시 버젓이 조선, 동아 두 신문을 민족지라는 이름으로 다루고 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조선일보는 친일 실업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가 초기 자본을 담당하였고 논조에 있어서도 명백한 친일 언론활동을 자행했다. 또한 동아일보 역시 일제하 몇 안 되는 고위 고관대작으로 남작 칭호를 하사 받은 김성수가 발행인이었다. 인적 구성에 있어서도 조진태, 예종석, 송병준, 방응모 등 적극적인 친일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광수나 최남선 등의 알려진 친일 문객들이 편집을 관장했기 때문에 민족지라고 해서는 안 된다.   

  

태극기(좌): 1890년경 고종의 외교고문이던 오웬 데니가 소장했던 초창기 태극기.

태극기(중앙): 1908년 제작된 태극기,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크기는 가로 144.5cm, 세로 129cm

태극기(우): 1923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에 걸렸던 태극기

* 상해 임시정부 태극기에 대해, 자유한국당 모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문재인 정부의 태극기는 왜 온통 붉은색이냐?”라고 항변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나라 일본의 교과서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웃이 우리와 관련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을 쉽게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혹자는 시대상황이 변했으니 상관없지 않느냐는 식의 논리를 앞세우기도 하지만 그런 주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한 변명일 뿐이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대외 침략전쟁에 앞장서서 협력한 친일파들을 우리 정부가 나서서 민족의 공로자, 지도자로 찬양, 기념하는 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조선 민중에게 유익했다고 주장하는 억지는 여전히 '정당'할 수밖에 없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공범이자 최대의 지지자는 바로 우리 자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번번이 반복되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하는 추악한 역사 왜곡에 맞서 이제 우리가 역사 바로잡기에 나서야 한다. 반민족 반민주 반통일의 역사적 원류인 친일파를 청산함으로써 조국의 건강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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