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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Jan 15. 2024

아라크네의 오만과 겸손

I.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라크네.

그녀는 신이 아닌 인간이면서도 비중 있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과연 누구이길래...     


그녀는 그리스 리디아의 염색 장인 이드몬의 딸 아라크네, 그녀는 베 짜기와 자수를 잘했는데 자신의 솜씨가 아테나 여신보다 뛰어나다고 떠벌이며 아테나 여신에게 베 짜기를 도전하는 오만함을 드러낸다.

그녀가 아무리 베 짜기 명수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실력을 너무 거만하게 뽐내는 바람에 아테나 여신은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아테나 여신은 노파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라크네의 오만함을 경고하면서 아테나와 시합하는 것을 멈출 것을 t설득한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이를 무시하고 여전히 자신이 아테나 보다 월등히 실력이 뛰어나기에 시합에 자신이 있다면서 아테나 여신과 시합을 하려고 고집을 피운다.

하는 수 없이 아테나 여신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아라크네와 베 짜기 시합을 벌인다.

아라크네는 아테나 여신과 베 짜기 시합을 하면서 제우스와 다른 여러 신들의 문란한 성생활과 올림포스 12 신들의 온갖 만행과 치부를 대단히 뛰어난 솜씨로 수를 놓는다.   

한편 아테나는 아테네 수호신이 되기 위해 포세이돈과 벌인 경합 장면과 신에게 불경한 인간이 벌을 받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그리고 올림포스 12 신들의 위엄을 수를 놓아 아라크네에게 경쟁을 포기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수 놓는다.     


Tintoretto, Athena 와 Arachne, ca1475-85 / Velázquez, 아라크네 우화, 1660 / Francesco del Cossa, 베짜는 여인들


그러나 아라크네는 그 의미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의 솜씨가 신을 능가한다는 오만함에 빠져 있다.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베 짜기 솜씨에 놀라면서도 신들을 웃음거리로 만든 자수내용에 모욕과 분노를 느낀다.

아테나는 아라크네가 만든 직물을 찢으며 아라크네에게 자신(인간)이 저지른 죄와 치욕을 느끼게 한다.

결국 아라크네는 치욕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매고 만다. 

아라크네는 베 짜기 명수였던 아테나를 능가한다고 오만함을 보이다가 결국 아테나의 저주를 받은 것이다

아테나 여신은 아라크네의 오만함을 경고하기 위해 영원히 실을 짓도록 그녀를 거미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그녀의 목에 매여 있던 밧줄을 거미줄로 만들어 버린다.


아테나(그리스어: Αθηνά)는 그리스 신화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신으로서 지혜와 전쟁을 관장하고 직물과 요리, 그리고 문명을 지도하는 여신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베 짜기 솜씨만을 자랑하며 상대가 아테나 여신이라는 걸 간과한 아라크네는 이미 르티아(Hamartia)’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라크네의 솜씨가 아무리 탁월하다 하더라도 여신 아테나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했는데도 아라크네가 이를 간과한 것은 이미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테나 여신과 아라크네가 드디어 솜씨를 겨루는 시합을 하게 되고 끝내 시합은 아라크네가 저주를 받게 되는 상황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     


P. P. Rubens, Pallas and Arachne / H. René Antoine, Minerve et Arachne / Antonio Tempesta, Athena


그리스 신들은 ‘변신’을 벌을 주는 방법으로도 사용했다. 

아라크네가 베 짜기 기술에 대한 오만함을 드러낸 벌로서 거미로 바뀌고, 메두사는 아테나의 신전에서 포세이돈과 사귀었기 때문에 괴물로 바뀐다.(그 후 아테나 여신은 인간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가슴에 메두사 모습의 브로치 같은 것을 달고 있다.)     

오늘날까지 아라크네가 받은 벌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미를 뜻하는 아라크니다(arachnida)라는 단어가 바로 아라크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주) ‘하마르티아(Hamartia)’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로 ‘판단의 잘못이나 착오 또는 비극적 결함’을 뜻한다. 이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재능과 인성을 가진 주인공이 악의 때문이 아닌 순간적인 잘못으로 인해 인생 전체의 비극적 파국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를 강조한 이유는, 주인공이 행한 결함의 크기가 극히 사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주인공의 모든 노력과 시간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게 되고 종말은 비극, 즉 죽음으로 끝을 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몰락은 스스로 신의 율법을 어기고(transgress) 오만(hubris)의 결과이기에 숙명처럼 하마르티아로 인하여 파멸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Adrien le coz, Arachne / Louise Bourgeois, Maman, 1995 / 단테 신곡 삽화



II. 


숲길을 걷다 보면 문득 얼굴을 덮쳐오는 거미줄, 갑자기 놀라기도 하지만 다행히 나는 거미에게 끌려가지 않고 거미줄을 벗어난다.

나뭇가지에 붙어서 바람에 나풀거리는 거미줄, 갑자기 어디선가 독거미가 나타날 것 같은 두려움에 거동은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나는 비 온 뒤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거미줄을 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숲 속에서 보석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곳으로 들어선다.

너무 예쁜 보석들을 보게 되니 동화의 나라에 온듯하다.

이 보석들에게 단지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기만 하다.

  

물방울 보석들과 마주하다보니 문득 아테나 여신은 만들어재지 못하는 것이기에,  아라크네의 솜씨가 아테나의 솜씨를 뛰어넘기에 아라크네가 감히 아테나에게 도전을 했었을 것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만과 겸손의 갈림길에서 인간 아라크네가 선택한 것은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오만을 택한 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아라크네가 살다가 그래도 한 번은 인간의 능력으로 신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죽음을 불사하고 도전을 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했었던게 아니었을까?

 

오만한 아라크네가 만든 보석들
숲속에는 오늘도 오만한 거미들이 묵묵히 보석 세공을 하면서 솜씨를 뽐내고 있지요.


가녀린 인간 아라크네의 순간적인 선택은 결국 죽음을 택하고 더할 수 없는 보석들을 만들어 냈다.

거미줄에 달린 물방울들, 아라크네만이 만들 수 있는 보석...     

거미줄에 달려있는 물방울들이 마치 구슬 같다.

어쩌면 은방울처럼 고운 소리를 낼 것만 같은 유리구슬들...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고운 방울소리를 낼 것만 같다.     


문득 거미가 우리 주위에서 거미줄을 치는 건 어쩌면 아테나 여신이 우리에게 오만이 아니라 겸손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려 했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테나 여신은 인간 아라크네에게 겸손을 강요했다.

그래서 거미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거미집을 만들때 1,000번도 넘게 오가야 거미집을 완성할 수 있도록 했다.

오만한 인간은 결코 하마르티아(Hamartia)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III.     


대부분의 거미는 암컷이 수컷보다 크다. 

무당거미의 경우 암컷은 25~30mm이지만 수컷은 암컷의 1/3인 6~10m밖에 되지 않는다. 

암컷이 쳐놓은 거미줄 가장자리에 서성거리는 거미는 대부분 수컷(새끼처럼 작은)이라고 보면 된다.      

수컷은 암컷의 사냥 찌꺼기를 먹으면서 짝짓기 기회를 노리다 짝짓기 후에는 재빨리 달아난다. 

그렇지 않으면 수컷 거미가 암컷 거미에게 잡아먹힐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암컷 거미는 간혹 먹이를 찾기 힘든 겨울이 오면 새끼에게 자기 몸을 내어주는 모성애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들을 지니고 있는 거미, 그런데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을 가만 보고 있으면 그 신기함은 더 커진다. 


어떻게 저렇게 작은 거미의 몸에서 저토록 멋진 거미줄을 만들어내는 건지, 더구나 각기 다른 종마다 다른 형태의 거미줄을 만들어내다니 정말 신기하다. 

신의 경지를 넘어선 아라크네의 솜씨가 빚은 거미줄 이어서인가?

어쩌면 인간보다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미는 이미 아라크네 처럼 천부적인 조각가인지도 모른다.     

거미줄을 보면 볼수록 그 모양새가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둥근 원처럼 보이는 거미줄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네모난 모양도 만들고, 때로는 밀림처럼 숲을 이루기도 한다.

   

6작품 모두 호주 태즈마니아 모나(MONA) 박물관에 설치된 유리상자에 직접 배양한 것을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거미 자신은 자기가 어떤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그냥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거미줄을 숙명처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그 어떤 것도 정해진 건 없는 듯 보이지만 거미가 만들어 내는 거미줄은 이미 오래전부터 각인된 기억에서 만들어내는 운명 같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거미는 전 세계에 5만여 종, 한국에는 약 600종이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종 중에서 물속에 거미줄을 치는 거미(물거미)도 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미도 있다.

거미는 우리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다.

     

설악산 화암계곡에서 만난 물거미집, 일반 거미집 보다 그 범위가 넓다. 물속 어딘가에 풍선같은 거미집이...


거미는 새끼를 낳으면 한동안 어미와 같이 살다가 일정 시기가 되면 새끼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 꽁무니 부근에서 뽑아낸 실을 타고 스파이더맨 처럼 멀리까지 날아가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간다.

거미는 거미줄에 매달려 타잔처럼 바람을 타고 수십 미터에서 수백 킬로미터까지 날아다니듯 이동을 하는데, 

거미는 비행 전 다리를 들어 풍속, 기류 등 비행조건을 판단한 뒤 꽁무니를 들어 수십 가닥의 거미줄을 공중으로 발사하고 상승기류를 타고 거미줄에 매달려  4,500m 고도로 날아올라 수백 km까지 비행할 수 있다고 하니 가히 오만함을 부려도 괜찮치 않을까?

아라크네, 그녀의 오만함이 결국 자신만의 신세계를 만들 수 있고, 그녀만의 왕국을 꾸려가며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멋진가!     


거미가 날아가는 곳은 거미의 엘도라도일까?

어린 왕자를 닮은 거미,

나도 오만한 아라크네가 만들어내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 같은 거미줄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 아라크네를 닮은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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