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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an 10. 2024

인도 기차에서의 성추행


인도를 여행할 때마다 늘 한 가지 의문인 게 있었다. 기차에서 자주 목격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일단 그들은 정상적인 승객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되레 말하자면 ‘깡패’에 가까워보였다. 다만 그들이 대놓고 기차 안에서 사람들을 겁박하거나 두드려 팬 건 아니었다. 대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돈을 걷고 있었다. 암만 봐도 보통의 승객들은 저들을 모르고 지금 처음 만난 것 같았는데도 그랬다. 


물론 모르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인도에서 특이한 문화는 아니다. 워낙 빈부의 격차가 큰 나라고 가난한 사람은 우리가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 가난하게 살기 때문에, 그런 광경은 사실 인도에서 빈번하다. 하지만 기차에서 이 광경은 아무래 생각해도 길거리에서 보던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평범한 ‘구걸과 적선’이라기 보다는, 깡패들이 시장에서 자릿세 걷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돈을 받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전혀 비굴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뻔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깡패’라고 하기에는 큰 돈을 걷어가는 것도 아니었다. 대개 한 사람당 뜯는 게 10루피(약 130원), 20루피 정도가 고작이었다. 또 여자들에겐 하지 않고 현지 남성들에게만 그러는 것도 이상했고, 사람들이 아무런 저항도 거절도 없이 순순히 돈을 주는 것도 내 눈엔 이상해보였다. 왠지 모르게 그 사람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 상하의 ‘당연한’ 위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가장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다. 여기서 만약 그들의 외모가 평범했다는 나는 그 사람들을 싸잡아 ‘그들’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련의 유니폼 같은 것이 없다면 그들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이고 각개전투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 그들에겐 일관된 특이한 외모가 있었다. 일단, 복장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여성이었다. 여성이 입는 옷과 여성이 하는 장신구를 했으며, 여성의 머리에 여성의 화장을 했다. 물론 이건 한참 잘못된 말이긴 하다. ‘여성의 무엇’이라는 말. 지나치게 구시대적이고 편견에 찌든 말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여성의 옷’이란 게 어디 있고, ‘여성의 헤어 스타일’이란 건 또 어디 있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롭게 스스로 원하는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성적인 고정 관념을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 관념이 과거에 비해 비교적 발전한 우리에게나 통하는 얘기다. 반면 인도라는 나라는 대체로 성적 고정 관념이 여전히 틀에 박혀 있다. 여성의 옷, 여성의 장신구, 여성의 머리와 화장 등이 두드러지게 고착되어 있다. 사실상 그런 식의 치장이야말로 ‘나 여성이오’라는 사회적 선언의 상징인 것이다. 아무튼 그런 겉모습, 그러니까 피부 위에 드러난 것들로만 보면 그들은 ‘여성’이었다. 


문제는 그 복장 안쪽에 숨겨진 그들의 몸이었다. 분명 복장은 여성의 그것이었으나, 그 안에 가려진 몸은 오직 남성의 그것만을 연상케 했다. 딱 벌어진 어깨, 다부진 체격, 근육질에 털이 부숭부숭 나 있는 팔. 각진 턱과 광대 그리고 이마 뼈. 거뭇거뭇 수염 자국이 선명한 턱과 볼까지. 과도한 테스토스테론이 아니라면 여성에게서는 매우 기대하기 힘든 전형적인 남성의 그것이었다. 


그 언발란스가 내겐 이상해보였다. 여성의 복장을, 그것도 보통의 여성보다 훨씬 과하고 심하게 한 남자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 촌놈인 나는 워낙 세상 경험이 적었고,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을 깨는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 정체가 무엇인 지는 알 수 없었다. 가끔 그들에게 돈을 주는 인도 사람들에게 소근대며 물어도 봤지만, 대체로 내가 물은 사람들과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인도 여행을 두 번 하는 동안 나는 그 진실에 대해 알지 못 했다. 그러다 세 번째 여행을 하면서야 진실은 마주했는데, 그 과정이 뼈가 시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모두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 번째 인도 방문. 어느덧 인도에 오가는 게 고향을 다니는 것처럼 편안해졌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몸과 마음으로도 그렇게 느껴진다. 전생에 인도 사람이기라도 했던 건지 때론 집보다 인도가 더 편할 때도 많다. 물론 수 년 전 인도에 처음 왔을 때는 여기가 너무 싫어서 당장 출국하고 싶었지만, 이러쿵 저러쿵 지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아무튼, 그 ‘사건’이 있던 날 나는 인도 서북부 라자스탄에 위치한 ‘조드푸르’라는 도시에 있었다. 다른 도시 이동을 할 때가 되어서 기차에 올랐는데, 이번엔 여정이 꽤 길었다. 목적지는 인도 중북부에 위치한 바라나시. 기차를 타고도 장장 스물일곱 시간이나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하지만 힘들 것은 없다. 그때 내가 이용한 객차는 ‘슬리퍼(SLeeper)’라는 등급이었는데, 우리나라 무궁화호와 달리 좌석이 의자가 아니라 침대형으로 되어 있다. 해리포터 같은 영화에서 나오는 ‘객실’을 생각하면 된다. 기차의 한쪽으로 길게 나있고, 한쪽엔 3층 침대가 좌우측에 늘어선 방이 9개가 이어지는 구조. 다만 영화에 나오는 객차와 차이점이 있다면 각각의 객실에 문이 달려 있지는 않다. 객실과 객실 사이에는 벽이 있지만 복도 쪽은 벽도 문도 없이 완전히 뚫려서, 사생활 같은 건 없다. 워낙 대중적이고 저렴한 등급이다 보니 기차에는 별의 별 사람이 다 오른다. 잡상인도 있고, 차를 파는 사람도 있고 하여튼 별의 별 사람이 다 탄다.


다만 그 날따라 기차에는 승객이 거의 없었다. 내가 탄 객차 한 량에는 기껏해야 너댓 명 정도가 전부였다. 전체 적정 승객이 칠십여 명이고 우리네 ‘입석’처럼 평상시 그 두 배는 거뜬히 타고 다니니 너댓 명은 사실상 그 량이 텅 빈 수준이라고 봐도 되었다. 너댓 명의 승객 중 한 사람은 내 맍은 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기차가 출발할 때부터 거기 있었다. 평범한 인도 남성이었다. 흰 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게 전혀 주의할 것 겅ㅂㅅ는 평범한 직장인 같았는데 휴가를 가거나 출장을 가는 듯보였다. 단 기차에 오를 때부터 줄곧 전화기를 붙들고 통화를 하고 있었기에 그와 대화를 나눌 일은 없었다. 워낙 바빠 보여서 눈인사를 나눌 것도 없었다. 


기차는 인도의 뙤약볕을 뚫으며 출발했다. 한 세네 시간 여가 지날 때까지 우리 객차의 승객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인도인 남자는 앞에 앉아 전화를 하고 있었고, 다른 승객들은 벽 너머에 있으니 어찌 되었는 줄 몰랐다. 새로 탄 승객은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밤에는 사람이 많아질 게 뻔했다. 그땐 이리 저리 낑겨 잠자기가 곤란해질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낮에 미리 자둬야 했다. 어차피 사람도 없겠다, 신발을 벗고 올라와 침대에 다리를 쭉 뻗어 누웠다. 그래봐야 1층 침대는 다리를 내리면 앉을 수 있는 보통 좌석 높이다. 앞에 앉은 인도 남자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는 백색소음처럼 들렸고, 나는 금셈 선잠에 들었다. 그런데, 깊은 잠에 빠지기 직전에 나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것에 의해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차갑고도 거칠으며 큼지막한 것이 내 배에 덥석 올려진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눈을 뜨고 정체를 알아보지 않더라도 감촉만으로 당혹스러웠다. 인도를 세 번이나 오가고 기차는 열 번도 더 타봤지만 이런 촉감은 처음이었다. 직접 겪은 적은 당연히 없을 뿐더러 어디서 들은 적도 없었다. 


깜짝 놀라 눈이 절로 떠졌다. 


웬 낯선 사람이 엉덩이로 내 배를 밀고 내가 누운 침상에 그대로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 배에 덥석 올려졌던 차갑고도 큼지막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엉덩이었다.


글로 쓰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론 절대 믿기 어려운 '이상하고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일단 이 객차 안에 빈 자리가 얼마나 많은데 이미 타인이 누워 있는 자리에 대뜸 앉으면 안 되는 거였다. 당장 내 맞은 편 인도인 남자 옆에도 자리가 비어 있었으니, 앉고 싶으면 거기 앉아야 했다. 또 만약 그가 어떤 사정이 있어 반드시 이 침상에 앉아야 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엉덩이를 들이 밀면 안 되는 거였다. 아무리 인도라는 나라가 별의 별 상상도 못할 일이 다 발생하는 소위 ‘인크레더블’이라 해도, 최대한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발 옆에 앉는 게 인도에서도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고 머리가 아예 하얘졌다. 하지만 그 다음 벌어질 일에 비하면 그 정도는 새발의 피였다. 


당시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자면, 나는 침대에 두 발을 뻗은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내 배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오른손 쪽에는 내 하반신이, 왼손 쪽에는 머리를 비롯한 내 상반신이 있는 구조였다. 그는 그 상태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제 막 잠에서 깬 나는 일단 놀라긴 했지만 아직 이게 생신지 꿈인지 분간이 잘 안 가는 상태였다. 아직도 여전히 누워 있는 채로, 나를 빤히 보는 그의 눈을 비몽사몽 상태의 나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짧은 적막을 깬 건 그의 다음 행동이었다. 


그의 오른손과 내 하반신은 그의 커다란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그 사각지대에서 오른손으로 내 사타구니를 힘껏 움켜쥐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큰 충격에 휩싸였다. 내 평생 이런 일을 당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일단 놀란 마음에 자동적으로 누워 있던 몸이 일어나졌다. 위기를 감지한 나는 마치 쥐며느리처럼 자동 반사로 그에게 반쯤 빼앗긴 하반신을 회수했다. 등 뒤의 벽쪽으로 물러나며 무릎을 가슴까지 당겼다. 그런데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여성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복장은’ 여성이었다. 새빨간 사리 에 긴 치마로 이뤄진 옷도 그렇고 귀걸이나 목걸이, 코 피어싱을 비롯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와 화장까지 전형적인 ‘인도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 분장 뒤에 숨겼지만 결코 숨겨지지 않은 그 골격은 아무리 봐도 전형적인 남성의 그것이었다.  두꺼운 피부와 털, 골격. 


지금껏 수 차례 인도 여행을 하며 자주 봐왔지만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던 그 ‘깡패같은’ 사람들. 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정체에 대해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인도인, 그것도 심지어 ‘이상한’ 정체로 보이는 이가 내 음부를 추행했다는 수치심과 공포에 일단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혔다. 나도 모르게 손을 마구 흔들며 생존의 울부짖음을 외쳤다. “짤로 짤로(저리가, 저리가)!” 하지만 그는 내가 궁지에 몰리고 겁먹은 모습을 보일수록 오히려 더 즐기는 듯했다. 음흉하고 변태같은 더러운 미소를 지으며 왼손을 들어 손바닥을 내 앞에 들이 밀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론 나를 또 희롱하는 듯한 이상한 손 동작을 취하며 다시 내 몸을 만지려 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왼손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이전에 인도인들이 이들에게 돈을 줬던 것처럼, 나에게도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줄 수 없었다.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돈을 줘서 이 공포스런 상황을 얼른 끝낼 수만 있다면 얼마가 됐든 줬을 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갑은 좌석 아래 깊숙이 밀어 놓은 배낭 안에 있었고, 이 상황에 부산스럽게 그걸 꺼내고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상상되지 않았다. 그러려면 최소한 벽에서 떨어져 앞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라도 그에게 1mm라도 다가간다는 것이 끔찍이 무서웠다. 나는 그저 이 성추행범이 얼른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내가 달라는 돈은 주지 않고 자꾸 경기만 보이자 그는 안 되겠다 판단했는지 다음 단계로 곧장 넘어갔다. 일단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봤다. 허리를 숙이더니 양 손을 금색 그림과 반짝이로 치장된 빨간 치마의 밑단으로 가져갔다. 음흉한 눈과 고개는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도 여전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서 나는 이건 보통 일이 아닐 거란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성적으로 상황 판단을 할 겨를도 없이 일단 고개와 몸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셀프 아이스께끼. 그 찰나에 그도 치마자락을 잡았던 손으로 만세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돌리던 그 짧은 순간에 그의 발목에서부터 허리 언저리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그의 까무잡잡한 피부의 연속을 의도치 않게 확인하고야 말았다. 다만 시바 신이 보우하사, 다행히도 그 모습은 마치 KTX 창밖의 풍경처럼 아주 짧은 찰나에 지나갔다. 나는 치마가 들춰진 그 자리, 사타구니에 무엇이 있는 줄은 전혀 보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아마 조금 전 내 사타구니를 강탈한 이 성추행범의 은밀한 곳을 봐버렸다면 나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말았을 것이다. 다만 그 까무잡잡한 색깔의 연속에는 끊김이 없었으므로, 그가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확인됐다. 


내가 눈을 바짝 감고 고개를 벽쪽으로 돌리고 있자, 그는 여기 좀 보라며 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아 끌며 채근했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고개를 돌린 채로 뒤통수로 손사래를 치며 오직 ‘짤로 짤로’만을 반복해 외쳤다. 그는 한 십 초 동안 내 어깨를 잡고 채근했는데, 이런 공포스런 상황에서 십 초는 십 년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무서운 마음에 끝끝내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깨를 잡고 있던 그의 손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히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이미 떠난 뒤였다. 허탈했다. 도저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완전히 당해버린 것 같은 기분. 이런 기분은 난생 처음이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내 영혼까지 완전히 난도질 당해버린 것 같은,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기분이었다. 심장 한 가운데에 결코 메울 수 없는 영원의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적나라하게 말해 남자로 태어나 이런 일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다. 학창시절, 소위 ‘바바리맨’이라는 이가 출몰할 때 여학생들이 충격이나 상처를 받는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었다. 물리적인 접촉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가 보여준 것일 뿐인데 뭐가 충격이겠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건 그런 일을 겪어본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겪을 일 없는 보이지 않은 권력을 쥔 이가 할 수 있는 거만하고 오만한 생각일 뿐이었다. 실제로도 막상 겪어 보니, 성적인 상황에선 원하지 않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는 거였다. 성추행에 대해서라면, 겪지 않고 생각만 하는 것과 겪는 것은 아예 질적으로 다른 일이었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냥 당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한바탕 해봐도 되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 나도 똑같이 되갚아 주거나, 최소한 주먹다짐이라도 불사하는 것. 본래 나도 그러려고 했다. 누구 못지 않게 한 성격 하는 편이기도 하고, 격투기도 제법 배웠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그럴 수가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성추행을 당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누군가와 충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건이었다. 그럴 용기 자체가 나오지를 않았다.  


공포는 그가 떠난 뒤에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 고향보다 더 편안했던 인도가 한순간에 생지옥처럼 느껴졌고, 이딴 거지같은 나라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노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무서워서 더 이상 붙어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그가 또 올까봐 잠들 수 없었고, 오히려 계속 주변을 살피는 등의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 정도의 공포는 내 삶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었다. 지금껏 나름 산전수전 겪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아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지금껏 타인의 성희롱 피해에 대해 조금이라도 쉽게 생각했던 어리석은 나를 반성했다. 


하물며 상처는 그 순간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한 보름 정도 그 후유증이 더 이어졌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후 도착한 도시에서 그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경기가 쳐지고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두근거렸다. 평범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일상적인 여행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한편, 그가 떠나간 자리가 텅 비어 있지는 않았다. 기차가 출발할 때부터 늘 거기에 앉아 있었고 지금도 앉아 있던 맞은 편의 인도인 남자. 이제까진 줄곧 전화 통화를 하느라 나는 본체만체 하더니 지금은 외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히즈라(Hijra). 저 사람은 히즈라였어.”

나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어리둥절했다. 그는 마치 이 상황을 관장하는 전지적 작가가 된 것처럼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저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여자처럼 옷을 입긴했지만 여성이 아니고, 남자처럼 덩치가 크지만 남성도 아니야. 너는 고개를 돌려서 못 봤겠지만 나는 봤어. 예전부터 알았기도 했고. 저 사람들은 남성기도 없고 여성기도 없어.”

그는 손가락으로 남성과 여성의 음부를 묘사하며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자냐 남자냐가 정해지지만, 아주 희귀한 확률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도 해. 저들이 바로 그래. 너는 저 사람이 돈을 달라고 했을 때 5루피건 10루피건 그냥 줘버렸어야 해. 돈을 안 주고 뻐팅기면 너한테 그랬던 것처럼 음흉하게 꼬집는다거나, 고추를 만진다거나, 심하면 치마 속에 얼굴을 묻어버리는 식으로 추행을 해버려. 한 마디로 괴롭히는 거지. 다음부터 저 사람 만나면 그냥 돈 주고 말아버려.”

문득 수 개월 전에 우연히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껏 나는 세상에 성별이 오직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들었던 그 얘기가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사람은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접해본 적이 없으니, 그냥 말로만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 기차에서 이렇게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분명 방금 전까지 공포에 완전히 천착되었던 나는 별안간 그 공포의 감정이 되레 낯설어졌다. 오히려 잘못과 책임의 총구는 그 성추행범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했다. 나라는 인간이 한없이 한심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왜 나는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저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몰랐던 걸까. 누군가의 존재마저 몰랐다는 것이 어쩌면, 단순히 한 번 성추행을 당한 것보다 더 큰 잘못은 아닐까. 


돌이켜 보면, 인도라는 사회에는 한국에서는 좀체 보기 드문 사람들을 상당히 자주 만나게 된다.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인 사람들. 사회의 분위기로 인해 숨어 있을 뿐이라서, 보이지 않아 없다고 착각되는 사람들. 


아무튼 인도에서 이 사람들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 한다고 했다. 세상이 ‘여성과 남성’이라고 하는, 이들을 배제하는 이분법적인 성별 시스템으로 돌아가니, 그 안에서 살아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래서 이들은 교외에 작은 공동체를 꾸려 사는데, 부득이 이런 식으로 돈벌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기차 같은 곳에서 불특정다수의 남성들에게 성적으로 놀림을 하거나 겁을 주는 방식으로.


내가 당한 그 일을 분명 세상은 ‘성추행’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성추행의 상황에서 피해자에게는 일말의 잘못도 없다. 오히려 피해자에게는 얼마든 가해자를 비난하고 책임을 물을 무한한 자격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성추행이라고만 단정 짓자니 무리가 있었다. 보통 성추행의 정의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함부로 누군가를 착취하는 것’이라면, 이건 성적 욕구라기 보다는 저들만의 살아남는 방식에 가까웠다. 추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


어쩌면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위계는 성(姓)에 의해 재조정 된다. 지금껏 살아온 삶에서 어떤 상하 관계가 있었건,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가 어떻건, 그런 것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리적으로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과도 전혀 다른 문제다. 개개인의 수준에선 성적으로 상대방을 장악하는 순간, 서로의 사이에 위계는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다. 가령 누군가를 정복했다는 표현을 쓸 때에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성적인 표현을 써온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런 인간 사회의 특성 때문에 ‘히즈라’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기차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어떤 잘못이나 선택과도 무관하게 선천적으로 결정된 ‘성’이라는 요소에 의해 사회로부터 배제 되었으니, 그러한 분위기를 뒤집기 위하여 다시 한 번 성(姓)이라는 요소를 활용하는 것. 


물론 그 동기와 의도가 다르다고 해도 내가 받은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성추행에 피해를 받은 이들이 얼마나 괴로워하는 줄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 경험은 내가 이전에 겪었던 어떤 상처보다 깊고 아팠다. 삶에 대해 가장 큰 절망을 안겼다. 무엇보다 아무리 머리로는 나 스스로를 질책하고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지만, 몸은 여전히 그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두렵고 불안했으며 노심초사였다. 다만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아무래도 혼란스러웠다. 


개인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저들은 나에겐 가해자이지만, 사회 권력과 위계의 차원에서 본다면 저들은 피해자였다. 어디서든 성별 기입 란을 두 칸으로만 나누며 세상에 의해 지워진 사람들. 또 나는 개인적으론 피해자이지만, 사회 권력과 위계에선 말없는 가해자였다. 어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들을 나는 모를 수도 있고 몰라도 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지녔으면서, 그에 대해 한 번도 관심 갖지 않은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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