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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Jan 10. 2024

진지한 명상을 재밌게 하는 방법

사실 명상은 진지하게 할 게 아니다

트렌드 코리아에서 나온 2024년의 키워드 중 하나는 '돌봄'이다. 갈수록 청년 우울증이 심각해지고 있고, 모두가 마음에 대한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명상 서비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명상이란 게 산업의 영역에 들어오며, 누군가는 이를 어렵고 복잡하게 여기는 경우도 생겨나는 것만 같다.


요즘 가끔 보면 '명상'이란 것을 사람들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 무엇보다 쉬운 게 명상이고, 사실 특별한 기술 같은 것도 없다. 


일반적인 명상의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핸드폰도 내려놓고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도 꺼두고, 그냥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눈을 뜨면 정신이 산만해지니 눈을 감는 게 좋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앉아 있으면 몸만 가만히 있을 뿐이다. 정신은 그렇지 못 하다. 오히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정신은 더 산만해진다. 별의 별 생각들이 다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게 아니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은 내가 만들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지들이 알아서 오는 거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건 관계 없이 '원래' 제멋대로 산만하게 군다. 생각은 맥락없이 날뛰는 꼴이 어린 개 같기도 하고, 미친 원숭이 같기도 하다. 원래 그렇다.


다만 평상시 사람은 그런 생각들이 왔을 때 생각에 휘둘린다. 생각이 이끄는 대로 이리 저리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상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오히려 마음이 평온하지 않고 괴롭다. 과거 불안한 생각도 떠오르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떠오를 때가 있어서다. 다만 명상을 하는 방법은 그렇게 올라온 '생각'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마음 속에 떠오른 어떤 생각도 당신이 만든 적이 없다. 가만 보면 '모든' 생각이 그러하다. 내가 만든 적이 없는데도 온 것이니, 그 생각들은 사실 '내 것'이 아니다. 조건만 맞으면 지들이 알아서 생겨나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니 끌려갈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럼 그 생각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객관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생각의 1인칭이 되어 생각을 '나'라고 착각해 끌려가는 게 아니라, 3인칭이 되어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것이다. 가령 '어라? 내 마음이 걱정하네.'라거나 '어라? 내 마음이 산만하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걸, 생각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생각이 떠올랐음을 알아차리는 거기 때문에 '알아차림'이라 한다. 사실 이 '알아차림'이 명상의 처음이자 끝이다.


그런데 그렇게 알아차리고 있다가도 그 '알아차림' 역시 금방 흩어진다. 기존의 생각이 떠올랐음을 알아차리고 있다가도 또 다른 생각이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그 새로운 생각에 끌려간다. 끌려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 한채 이미 다른 생각에 빠져있다. 속세말로 하자면 알아차림에 대한 '집중'이 깨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당신이 뭐 어디가 부족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원래 사람 마음은 다 그렇다. 알아차림은 한 번에 되는 게 원래 아니다. 조금씩 그 간격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 하려고 하면, 명상이 부담스러워진다. 


어쨋거나, 마음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 가급적 '알아차림'이 생기면 그걸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명상에선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라고 하는 것이다. 생각이 올라왔음을 알아차렸을 때 그 생각을 계속 보고있는 건 마치 방파제에 올라 파도를 보고 있는 것과 같아서, 나도 모르게 파도에 휩쓸린다. 그렇게 되지 말라고 내 정신을 호흡에 붙잡아두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리저리 발발거리고 뛰어다니는 개를 못 뛰어다니게 말뚝에 밧줄을 걸어두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말뚝은 실제 개 말뚝처럼 강하지는 않다. 호흡에 집중을 하다가도 그 의식은 금방 또 흩어진다. 생각을 안 해본다거나 의식을 호흡에 집중한다는 건 말로만 들으면 정말 쉽고 간단해 보이는데, 실제는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적잖은 스트레스를 겪는다. 명상이란 걸 잘 하고 싶고 집중도 잘 하고 싶은데 실제론 영 안 되니 마음이 답답한 것이다. 이 쉬워보이는 걸 나는 왜이렇게 못 하냐며 자책도 한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인해 사람들이 명상을 배우러 왔다가 금방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다.


호흡에 집중을 했건 생각을 알아차렸건 그 의식이 금세 또 흩어져 마음이 산만해지는 건,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기 때문이다. 당신이 못 해서가 아니다. 당신만 산만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원래 모두 산만하다. 내면이 안 산만한 사람이 이상한 거지, 산만한 사람이 정상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 '제일' 어려운 게 바로 그 생각이란 걸 안 나게 하는 거다. 말로만 쉬워보이지 실제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이걸 고치려고 부단한 노력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고치고자 한다고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란 것이 본디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 아닌 걸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수십 년 명상을 한 사람도 마음은 쉽게 흩어진다. 


반면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오히려 명상에 이롭다. 즉, 마음이 흩어지면 '나 왜 이렇게 못 해'하고 자책하는 게 아니라, '와 진짜 저절로 흩어지네'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우리의 마음은 앞서 말했든 어린 개와 같다. 어린 개는 여기저기 발발 돌아다니며 정말로 산만하다. 꼭 개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도 그렇다. 이거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가도 다른 게 오면 다른 것으로 마음을 빼앗기고, 또 다른 게 나타나면 또 마음을 빼앗긴다. 그렇다고 우리가 어린 아이나 강아지들을 미워하거나 욕하는 법은 없다. 개건 사람이건 어린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굳이 바꾸려하지 않고 인정하니, 미워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오히려 어린 개나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그들을 더 귀여워하고, 예뻐해준다. 


자신의 마음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도 그래야 한다. 스스로 정신이 산만해진 모습을 '발견하면' 나 자신을 귀엽고 예쁘게 여길 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호흡에 집중하려 애쓰지만 결국 잘 못 하고 있는 나 자신의 노력이 가상해 보이고, 예뻐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오히려 마음이 산만해지고 집중이 깨질 때면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 그렇게 열심히 하려 하지만 안 되고, 쉬워 보이지만 실제론 어렵다는 현실의 벽이 나를 웃게 만드는 것이다. 그처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과정. 그게 곧 '명상'이다. 

 

때문에 사실 명상은 어렵거나 진지한 게 아니라, 재밌고 유쾌한 일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줄 알게 되면, 웃으려고 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때마다 피식 피식 웃음이 난다. 


'웃음 명상'이란 걸 따로 할 게 아니라, 명상을 제대로 하면 원래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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