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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토녀, 에겐남 밈이 반가운 이유

by 타와의 철학

요즘 이른바 '테토녀', '에겐남' 이라는 이름의 밈(meme)이 여기 저기 유행하고 있다. 뜻은 간단하다. '테토'란 우리가 흔히 '남성호르몬'이라고 부르는 '테스토스테론'의 준말이다. '에스트로겐'은 흔히 '여성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에스트로겐'의 준말이다.


'테토녀'라는 건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나오는 여자'라는 뜻으로, 이른바 '남성스러운 여자'를 뜻한다. 반대로 '에겐녀'라고 하면 '에스트로겐이 많이 나오는 여자'로서, 소위 '여성스러운 여자'라는 뜻을 갖는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말은 말장난으로 느껴질 지도 모른다. 그냥 '남성스러운 여자'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테토녀'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가 있다.


66.jpg 출처 : 인스타그램 네쪼툰(@nezzo_toon)


이런 신조어가 생겨난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요즘은 '남자답다'라거나 '여성스럽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사용하게 되면 눈총을 받기 쉽상이다. 기실 10년 전 불었던 페미니즘의 바람은 그런 말들을 터부시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말들은 어떤 사람들에겐 자칫 폭력적일 수 있어서였다.


먼저 우리가 사람의 성별을 남성, 여성으로 구분하는 건 '염색체'를 통해서다. 학창시절에 나온 XX, XY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것. 그걸 보통 '생물학적 성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남자답다'라거나 '여성스럽다'라는 말은 생물학적 성별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더 구체적으로 따졌을 때 그건 '행동'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성별과 달리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염색체가 아니라 '호르몬'이다. 한 마디로 남자를 '남자'로 만드는 건 앰색체지만 "남자'답게'" 해주는 건 테스토스테론이란 호르몬이요, 여성을 '여자'라는 성별로 만드는 건 XX 염색체이지만 행동적으로 "여자'답게’" 만드는 것은 에스트로겐인 것이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도 여성인 사람에게도 '남성스럽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이게 말장난처럼 들리고 아리송하다면 글을 잘 읽고 계신 것이다. 어딘가 잘 구분되지 않는 애매모호함에 이 '남자답다'라는 표현의 문제가 있다.


문제는 그 염색체와 호르몬이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일치하겠지만 그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론 여성이어도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의 발현이 우세해 이른바 ‘남성다운’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행동이 그러할 뿐 생물학적 성별로는 여성이니, 이 사람에게 만약 ‘너 여성스럽지 못 하다’라고 한다면, 그건 자칫 그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하는 언사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호르몬의 발현'이란 것에 의해 단지 그런 행동이 나올 뿐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분명 맞는데도 '여자같지 않다'라고 말한 것이니, 의도했건 아니건 듣는 사람에겐 폭력적이다. 상처가 되는 게 당연지사다.


무엇보다, 표현의 마땅함 여부를 떠나 애당초 부정확하다. 반면 개인의 행동을 오직 ‘호르몬’으로서 표현한다면 정체성이 아니라 행동에 대해서만 하는 말이기에 비교적 정확하고, 정확하기에 폭력적이지 않다. ‘여성스럽다’라는 말에는 생물학적 성별과 호르몬이 뒤엉켜 있어 애매모호하고 위험할 수 있으나, ‘에겐남’에는 생물학적 성별과 호르몬이 모두 병기되어 있어, 비교적 건강한 것이다. 그렇게 부를 때 비로소 애매하지 않고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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