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발그레 웃고 있는 소녀의 얼굴처럼 꽃들이 예쁘게 피어날 때쯤이었다. 아파트 1층이던 우리 집 앞 화단에서는 푸릇푸릇 새싹들이 올라오고 나무들은 드디어 겨울이 지났다고 환호성을 지르는 듯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커튼을 열었더니 눈 부신 햇살에 이마가 찌푸려졌다. 그리고 화단의 화사한 꽃들을 보는 순간 평상시와 같던 마음이 갑자기 저 땅 밑으로 푹 가라앉았다. 마치 사막 속 어딘가 모래 수렁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어머 나 왜 이래? 미쳤나 봐’
집안에 혼자 있었기에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소리 없이.
영문을 몰라서 ‘왜 이러지? 명진이 너 왜 그러니?’ 괜히 나 자신을 타박했다. 당황스러운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다른 일이 필요했다. 싱크대 앞에서 서서 고무장갑을 끼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쏴~~’ 소리를 내며 내려오는 물줄기를 멍하니 보고 가만히 멈춰버렸다. 더 많은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급기야는 ‘엉엉’ 소리를 내며 오열을 했다. 갑자기 시작된 눈물은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눈이 퉁퉁 붓고 머리도 지끈거리고 나중에는 배도 아팠다.
멈출 것 같지 않던 눈물이 멈추었을 때 알게 되었다. 내가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23살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나의 모든 고민과 걱정, 선택은 항상 남편과 아이들이었다. 나름 주체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둘째 딸아이까지 대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 찾아온 외로움과 허무함, 상실감이 내 안에서 풍선처럼 커지다가 ‘뻥’하고 터졌나 보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게 너무 끔찍했다. 아무것도 아닌 양 그냥 넘겨보려고 애썼는데 잘되지 않았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아이들이 멀리 지방으로 간 것도, 유학을 간 것도 아닌데, 평상시와 똑같은데 무슨 걱정이냐고 한다.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성과는 따로 노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너무 아프고 시리고... 못 견디게 슬펐다.
한 달 정도를 괜찮다고 다독였다. 친구들, 지인들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사막 속에 서 있는 선인장 같았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 가지는 깨달았다. 너무 오랜 시간 내 마음을 돌보지 않고 살았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구도 아닌 ‘나’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세상에 굳건하게 바로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