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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ekick Apr 12. 2016

연애인

복잡한 맞춤법의 세계 속에서 겪은 일

두발 길이 3센티미터를 항상 유지하며 지냈던 나의 중딩시절, 나의 방과 후 활동은 언제나 수영반으로의 출석이었다.


마린보이들을 육성하는 그런 수영반이 아니라, 빼어날 수秀, 영재 영英. 즉, 공부 직싸게 시키려고 만든 반이었다.


이 수영반의 본래 취지는 다름 아닌 '특목고'로의 진학이었는데, 이유인즉 당시 내가 다니던 B 남자 중학교는 나름 명문으로서 대대로 인천에서 과학고를 가장 많이 보내던 학교였다. 

(내가 입학하던 해에는 무려 12명을 보냈다 - 당시 과학고의 한 학년 정원은 60명)


그 명성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우리의 고마우신 스승님들께서 합심하셔서 수영반을 편성하셨고, 전교 석차 X등까지로 커트라인을 잡아서 논술, 영어, 수학을 심화된 레벨에서 가르치셨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나 자신 또한) 학원이나 과외 등의 사교육에는 큰 믿음을 두지 않으셨던 터라 국민학교 6학년 때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마지막 국민학교 세대였다) 산수 시험에서 경악할 점수를 받고 집에 울면서 돌아와 "나 학원 보내주세요 ㅠㅠ"라고 해서 잠깐 다녔던 적 빼고는 - 그나마도 몇 번 학원 문을 들락거리다가 별거 없는 것 같아 그만뒀던 - 오로지 학교 수업에만 집중해왔었기에 나로선 참으로 고마운 기회였다.


그 날은 논술 수업이 있던 날이었는데, 우리가 지난 시간에 써서 제출한 "연예인의 상품화"를 주제로 한 논설문을 평가받을 시간이었다.

원래는 국어 선생님께서 맘에 드셨던 찬/반 논지들을 집어 주신 후에, 다음 논술 주제를 제시해주시고 그에 대해 다 같이 토론하는 건데, 그 날은 갑자기 다짜고짜 우리 중 몇몇은 가장 기초적인 공부도 안되어 있다면서 나무라셨다.


그러시고는 칠판에 하얀 분필로 누구든 다 자지러지게 싫어하는 끽- 끽- 소리를 내며


"연 예 인"


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시고는 '예'자 밑에 노란 분필로 벅- 벅- 밑줄을 그으시더니,

"연예인의 예 자는 예술할 때 예 자란 말이야. 이게 아니고 말이야!"

하시면서,


"연 애 인"


이라고 그 옆에 벅- 벅- 쓰셨다.


순간, 반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졌고, 다들 어이가 없어서는,

"요즘 연예인들은 티비 나와서 연애하나 보지? ㅋㅋㅋㅋ"

"아예 모르면 그냥 탤런트라고 쓰던가 ㅋㅋㅋ"

"아냐, 그냥 딴따라-라고 쓰지 그랬을까 ㅋㅋㅋㅋ"


나 역시도 '누가 저런 어이없는 실수를 했냐' 하면서 같이 웃고 떠들다가, 개개인의 이름이 호명이 되어서 자기 논설지를 받으러 교탁으로 갔다.


그런데 국어 선생님께서 시험지를 나에게 건네주시면서 이상야릇하게 가느다란 눈초리를 날 쳐다보셨고, 난 '뭐지?' 싶어 하면서 내 눈길을 시험지로 옮겼는데,


이게 웬걸,


시험지 가득 빨간 색연필로 그려진 동그라미들이 빨간 눈송이들 내리는 거 마냥 펑. 펑. 쏟아지고 있지 않던가.


더욱이 주제가 연예인이었던지라 나의 '연애인'이란 단어는 한 문장이 멀다 하고 쓰여있었고, 그 위에는 어김없이 빨간 동그라미가 - 딱 봐도 신경질적으로 - 그려져 있었다.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 어이없음, 쪽팔림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논설문 맨 끝자락에 있는 선생님의 논평은 읽을 생각도 않고 얼른 접어서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 날을 이 후로 나에겐 철자법에 대한 일종의 노이로제가 생겼다.

사소한 글을 쓰다가도, 메신저로 채팅을 하다가도 헷갈리는 단어가 있으면 꼭 야후!사전을 클릭한다.


한글에 대해 좀 아신다는 분들이 모여서 '이건 이렇게 쓰는 게 정석이라고 하자'라고 해서 만들어진 게 철자법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약간의 억울함을 품은 채..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간간이 하는 철자법 실수에 대해선 매우 관대해졌다.

나라고 더 나을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철자법이 존재한다.

개성과 창의력이 강조되는 요즘이지만, 필요에 따라서 때로는 다소 천편일률스러운 것들을 정석대로 지켜줘야 서로가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일에 '정석' 이란 게 정해져서, 방향을 못 찾을 때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이 있으면 어떨까 한다.


때로는 각본이 있는 드라마가 보기 편한 것 같기에.



Epil.

우리의 수영반은 3년 내내 계속되었지만,

중 3 초반 무렵, 당시의 이해찬 교육부 장관님께서는 모두를 혼란케 만든 내신 평준화 정책을 발표했고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대충 말해서 공업고 1등이랑 과학고 1등이랑 같은 등급의 내신점수를 준다는 내용?) 특목고 진학에 대한 흥미를 잃은 대부분의 우리들은 '용의 꼬리가 되느니 닭의 벼슬이 되겠다'는 심산으로 보통 고등학교들로 지원했다.


나 역시도 아버지께서 나오신 - 예전에는 명문이었던- J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가끔씩 궁금하다.


평균 고등학교로 간 그 아이들은 정말 닭의 벼슬이 되었을까.

끝까지 특목고를 고집한 그 네 명의 녀석들은 가서 잘 했을까.

그리고 왜 난 그때

당당의 용의 뿔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던 걸까.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난 어떤 모습일까.


-과학고의 학생들을 앞으로는 성적보다는 '떡잎'을 보고 뽑으려고 한다는 기사를 읽고 옛 생각이 나서 끄적끄적


200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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