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아워를 보고
#1
단지, 계란 하나 때문이었다. 그 맑고 쾌청한 휴일 낮, 애 엄마가 하이톤의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를 향해 온갖 비방을 쏟아낸 것은. 아침에 냉장고에 들어 있던 계란을 꺼내어 후라이해 먹은 게 나의 죄목이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초등학생 아들이 먹을 계란을 내가 몰래 먹었다는 게 정확한 이유였다. 아들의 계란은 10개들이 유정란이고 냉장고에 보관된다. 내가 먹는 계란은 30개 한판짜리 일반 계란이고, 상온에 보관, 아니 방치되어 있다. 내 계란이 다 떨어져서, 아들 계란 하나 꺼내 먹었다는 건 변명이 안되었다.
#2
결국, 그 화장품은 한번도 바르지 않았다. 미국 출장 다녀오는 길에 사 온 거였다. 여자들 화장품을 잘 모르니, 면세점 점원에게 아내 나이도 알려주고, 피부 상태도 말해주면서, 고민고민해서 선택한 것이었다. 나름 고심하고 신경쓴 거였다.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띄며 내놓는 그 자리에서, 아내는 대뜸 자신이 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했다. 심지어, 필요없으니 갖다 버리든지 남주라고까지 했다.
물론, 아내가 쓰는 화장품 브랜드를 잘 몰랐다는 건 내 부주의고 불찰이었다. 원하는 게 화장품이 아닐 수도 있는데, 미리 물어보지 않은 건 깜짝선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면세점 점원이 스킨, 로션같은 기초 화장품은 여러 브랜드 두루두루 쓴다는 설명도, 이 정도면 되겠지 나를 방심하게 했다.
그 시절,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계란이나 화장품 같이 사소한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크고 작은 갈등들이 계속 누적되면서 난 불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행복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는데서 온다. 잘했다고 인정받고, 덕분이라며 고맙다는 말을 듣고, 사랑한다며 어깨에 상대방의 머리가 얹혀질때 뿌듯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설사, 귀한 아들을 위해 따로 계란을 준비해도, 당신 덕분에 아들한테 더 잘해 줄수 있으니 고맙다고 했더라면… 비록 나몰래 그 화장품을 남에게 주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써볼까 하며 기쁘게 받아 주었더라면…
영화 해피아워는 제목에서 내비치듯 관객에게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부부간, 남녀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반추해 보게 만드는 영화이다.
잘 나가는 학자이며, 가정적이며, 착하기까지 한 남편을 둔 쥰은 어느 날 이혼 소송중임을 밝혀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그 일로 인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친구들.
누가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행복할 것만 같던 부부가 왜 이혼을 하게 될까? 영화는, 결코 타인은 알 수 없는 부부간, 이성간의 내밀한 스토리들을 찬찬히 보여준다. 감정선의 흐름이 느리지만 아주 섬세하다. (누군가에겐 지루하다. 정말 영화를 사랑하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영화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겐 특별한 기쁨을 주는 영화이다.)
쥰의 남편은 아내 쥰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다만, 그는 아내에게 고지식하고 온기가 없이 건조하게 대했던 그 시간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자신에 맞서 일부러 바람까지 피워 자신이 이혼을 원하게 하려 하는 아내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자신이 가진 걸 다 내준다고 상대방이 반드시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사랑하기까지 하는 데도 상대방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과학자인 쥰의 남편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1+1=2라는 엄격한 수식이,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프로세스 상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이 갖는 모호함과 의외성을 간과하고 있다. 아마도, 쥰의 남편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옛 가요의 가사를 여전히 아리송해할 것이다.
상대방이 뭘 주든 간에, 자신이 뭘 갖던 간에,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야만 행복하게 된다. 돈? 명예? 권력? 가족? 사랑? 믿음? 건강? 젊음? 무소유? 그 모든 것일 수도 있고 그 어떤 것도 아닐 수 있다. 행복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행복의 잣대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오롯이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판단된다. 행복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룰이란 건 없다.
5시간반의 긴 런닝타임의 해피아워를 보고 나면 머릿속에 강하게 질문 하나가 남는다.
지금 나는 정말 행복한 걸까?
20220306
행복하자고 결심해야 행복이 온다고 믿는 놀자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