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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작가 Mar 18. 2021

왜 우리는 '사랑'을 하고 싶을까

가장 보통의 철학,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첫사랑이 10년이 훌쩍 지나 찾아오는 <건축한개론>은 수컷들을 위한 판타지다. 수지는 일약 국민첫사랑이 됐고, 한가인은 남자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히로인이 됐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현실에는 일어날 리 없는 망상이나 다름없다. 


남자들이 윤종신의 '좋니'라는 곡에 환호할 때 여성들은 그 노래 가사를 들으면서 코웃음을 쳤다. 남자들에게는 진솔하게 와 닿는 노래 가사가 여성들에게는 있어서는 지질의 극치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음악도 '좋아'다.


남자에게 있어 첫사랑이 중요하다면, 여성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사랑이 중요한 듯 보인다.  가끔은 첫사랑을 기억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고 나서 나는 어렴풋이 주인공과 나에 모습을 감정 이입했다. 나뿐만 아니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남성들은 보통의, 가장 보통의 철학에 공감하고 눈물지었다. 어쩌면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매정하게  '나'를 떠나버린 클로이에게 분노하고, 그런 그녀를 잊지 못해 자살까지 생각하는 지질한 '나'에게 분노한다. 그렇게 첫사랑이라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미명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는 생각보다 많다. 나도 그중 하나였을지 모른다.(하나다. 명백한 사실이다.)


나를 포함해, 떠나간 첫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소주 한 잔을 부른 놈들은 소주 한 짝이다. 그중 가장 독특했던 첫사랑론을 폈던 놈은 자신이 만나는 모든 그녀들이 자신에게는 첫사랑이라는 놈이었다.


녀석에게 있어 자신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첫사랑이다. 왜냐하면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그것도 대한민국이라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서울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서로를 찾아내 만났고 감정을 교류했고, '처음' 서로라는 대상을, 존재를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처음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 녀석의 일반 '첫사랑론'이 특별한 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말장난 같았다. 사고의 전환 인지도 모른다. 지금 와 다시 곰곰이 씹어보면 그것은 꽤나 괜찮은 첫사랑론이었다. 어쩌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의 가장 보통의 철학과도 맞닿는 것이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그저 그런 찌질이의 첫사랑 타령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며, 보통은 지금의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약관의 젊은이가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깨달은 철학은 결국 우리는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는 흔하디 흔한 가장 보통의 철학이자,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한 번도 안 해보는 이는 있어도 단 한 번만 해보는 이는 없다는 것과 같은 일상의 진리이자 가장 보통의 철학.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읽히는 것일 것이다.


레이철이 다음 주에 저녁 식사를 하자는 내 초대를 받아들였고, 그 후로 그녀 생각만 해도 시인들의 마음이라는 부르는 영역이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떨림은 한 가지를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


이 마지막 한 문단은 결국 남성과 여성, 지금 사랑하지 않는 사람, 모두 유죄라는 말과 같은 표상의 의지로 다가온다. 지난 몇 년간 연애다운 연애, 사랑 다운 사랑을 하지 못했다. 말로는 귀찮다, 연애는 '딱히'라고 말했지만 나는 항상 '사랑'할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기회가 없었고, 때마다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더 나은 누군가, 그럴싸한 운명의 상대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이것 또한 비겁한 자기변명이다. 그래서 내게 연애는 아주 요원한 것들이기에 나는 첫사랑과 그다음 사랑들에 대한 추억만으로도 썩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고 추억할만한 연애였다고 자위하면서 시간을 보내왔다.


그것은 그것 나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좋지도 않았다.  그러다 최근 문득문득, 아니 아주 적나라하게  깨닫고 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같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설렘이 자꾸만 나를 살아가고 싶게 하고 더 좋은 사람으로, 더 나은 인간으로, 더 멋진 남자가 되자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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