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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타페타 Jul 15. 2022

악연이란게 있을까요?

유통기한 2주 썸남의 기억

이 글은 소개팅 어플에서 만난 한 남자에 관한 기록이다. 그와 끝이 난지 아직 이틀 정도 밖에 안되었고 내 기분이 아직 정리되지 않아 썩 유쾌하진 않지만, 무엇이든 기록에 남기어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을 때 내가 얻는 교훈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무어라도 적어본다. (이 글조차 흑역사가 될 수 있지만 그때가서 비공개 처리를 하도록 하자 ㅋㅋ)


그는 29살의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2주간 있었던 사건들에 비춰 보면 그의 이미지가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동안 스쳐갔던 '이성도록'에 색인을 넣는다면, 그는 아름다운 청년이라 할만 하다. 그는 약간 처진 눈의 매력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나는 과연 처진 눈에 취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와, 적당히 호리호리한 체격,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느낌의 옷차림까지. 외모라는게 한 사람의 성향이 이렇게 짙게도 나타날 수 있구나 싶은 이미지였다. 


한눈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서른 셋의 나는 그리 많이 나이든 것도 아니면서, 그런 일이 정말로 [기적]이라는 사실에 감탄하며 언제 그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매력적이었다. 그에게도 내가 매력적이었던 듯하다. 나의 취향과 생각들에 감탄하는 눈빛과 언어가 그를 더욱 매력적이게 포장했던 것 같다. 데이트를 준비하는 것이나 함께 있는 시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재주도 신기했다. (예를 들어 이 식당을 갔을 때,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게 뭔지, 자기와 함께 있을 때 어떤 음악을 틀지,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지, 나를 어떻게 배웅해 줄지 등... 도 모두 고려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기는 물론 순수했던 것 같지 않지만, 남자가 말그대로 여자를 꼬시고 싶을 때 (ㅋㅋㅋ) 이렇게나 세심하고 정성스럽고 사근해질 수 있는지... 왜 능숙한(???) 남자를 만나고 싶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고나 할까.


최고점은 세번째 데이트였는데... 난생처음 야! 타! 를 당해본 것이다 ㅋㅋㅋㅋ 그는 오토바이를 자주 타고 다녔는데 그날 말도없이 데이트 장소까지 오토바이로 이동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반포대교를 건너다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때 뭔가 머릿속으로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이 시간은 오래 기억에 남겠다' 싶었다. 


그런 남자여서 행운이라 생각했던걸까? 나는 좀 문제가 될 수 있는 그의 부분들이 금방 눈에 띄었음에도 그것을 (스스로에게나, 둘의 대화에서나) 문제삼을 시간을 나중으로 미뤘다. 그는 현재 무직이고 9월에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떠날 예정이었다. 내가 그를 만난게 7월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자 했다는게 얼탱이가 없는 시점이었고 두번째 만남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황당했다. 연애관도 너무 달랐다. 나는 연애는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라 확신하고, 그는 역시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절대로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다. 감정이 중요하고, 후회하더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나는 이를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하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 지금 이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좋다면. 이렇게 결정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이상형에 가까운 점들이 많았다는게 함정이었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치관이 부딪혔다. 가치관은 세상을 보는 렌즈 같은 거다. 다른 렌즈로 보니 한 사람은 초록색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빨간색이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틀렸다. 한톨도 맞춰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깨진 이유는 둘째치더라도, 그는 요상하게 특이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몇년전 산업단지를 팔며 돈을 꽤 많이 벌어봤다고 했다. NTF 제작도 준비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돈버는 방법을 여러군데서 (켈리최 같은 사람들의 강연을 열심히 들으며 실천하는듯 했다)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은 투자에 관해 얘기해주었다. 서울옥션에 판매되는 그림들을 보며 이중에 살만한 그림이 뭔지, 3천만원을 내면 월에 얼마를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 옥션에 한번 참여해 보고 싶어서 그자리에서 바로 멤버십을 결제했다는 둥. 지금 당장 수입원도 없는데 미술품 투자를 취미로 (취미라면 취미, 투자라면 투자?) 생각한다는 것이 평범한 월급쟁이인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참기 어려웠던건, 자신이 믿는 것이 조금이라도 의심받는다거나, 민감하게 생각하는 주제를 건드리면 급발진한다는 거다. 내가 한 말을 바로 단정짓고, 그게 왜 틀렸는지 한참을 설명하고, 자기 말을 끊지 말라고 한다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관계를 맺고자 했던 건 아니었지 싶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나랑 보내는 시간에 감동했다기 보다는. 갖고 싶은 사람을 탐하는, 그 과정을 즐거워 했던 것 같다.


친한 언니가 내게 '뭔가 쌔한거 같으면 그게 맞다'는 웃픈 조언을 해주었다. 맞아, 쌔했다. 사실 금방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이미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캘리최라는 사람의 강연에서 감명을 받은 듯 한데 -- 시크릿이란 책을 들고 있는 그녀의 영상을 몇번 봤던 걸로 기억한다. 시크릿이란 종교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네. ^^



(더 시크릿 - 나무위키)

시크릿의 내용은 새로운 것은 아니고 미국에서 18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신사고운동(New Thought Movement)이라는 정신사상의 주장들을 정리한 것이다. [6] 신사고운동은 큄비(Phineas Quimby)라는 최면요법사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큄비는 '모든 질병은 생각에 의해 생겨나며 잘못된 생각을 교정하면 질병이 치료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그의 사상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분야로 계승발전되었고 특히 자기계발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신사고운동의 영향력이 자기계발과 의식 분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통일된 이론은 없으며 생각의 비중을 어떻게 두느냐는 사람들에 따라 다른데, 가볍게는 일상생활에서의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수준에서 '생각이 모든 것이다'라는 과격한 주장까지 있다. 시크릿은 이 중에 과격한 주장 쪽이며 생각과 느낌만으로 거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1%만 아는 비밀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다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1%만 아는이 아니라 1%만 성공한이 맞는다. 이 책의 내용은 어린아이도 다 아는 것이다. 다만 전 세계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1%인 것 뿐이다. 아래도 언급되지만, 모든 사람이 믿고, 모든 사람이 실천해도 그래서 실제로 성공한 사람의 비율은 그 정도가 될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성공할 줄 모르고 했는데 성공했어요라고 진심으로 믿고 말하는 사람이 성공했다는 사람들 중에서 1%는 될지 의문이다. 결국 열심히 빌면 이루어 진다는 것은 기복신앙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수험생이 수능 잘 되라고 부모님들이 유명한 자연물에 비는 것 혹은 사업 잘 되라고 절에 가서 열심히 불상에 절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개인에게 미치는 모든 현상을 생각의 작용이라고 여겨도 후대에는 원리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경우가 많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상식으로 통용되는 과학적 원리도 예전의 미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 시크릿에 대해 찾아보고 나니 ㅋㅋㅋ 더 이상 그와의 헤어짐이 아쉽지 않다. 그가 건강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워홀을 떠나 원하는 바를 꼭 이뤘으면 좋겠다. 그리고 뭔가 쎄할 땐... 유혹에 빠지지 말고 얼른 도망치자! 나의 건강한 연애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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