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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타페타 Jun 04. 2022

다시 펼치지 않을 일기를 쓰겠다

일기를 그동안 적지 못했던 이유

일기쓰기는 내게 오랫동안 큰 즐거움이자 취미였다.

그 일을 멈추게 된 이유가 뭘까, 문득 떠오른 이유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일기를 쓰고, 종종 다시 들춰 읽으며, 그때 그 순간의 내 시선과 감정을 다시 음미하곤 했다.

어떤 것은 부끄러웠고 어떤 것은 즐거웠으며 어떤 것은 회상에 젖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 간의 일들은 전혀 그 반대였다.

지우개가 있다면 영영 지워버리고 싶은 구간이다.


그럼에도 다시 써보려 한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첫 시작은 전쟁의 외상을 가진 의사 왓슨이 테라피스트에게 일기쓰기란 처방을 받는데서 시작한다.

나에게 그런 치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써본다.

그리고 복잡한 생각들을 여기에 뱉어낸뒤 (실제 만져지는 물체는 아니지만) 꼬깃꼬깃 접어서 여기 버려두면

어쩌면 내 실제의 정신세계는 좀더 평안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또 어쩌면 누군가는 나의 글을 읽으며 이런 작은 공감이라도 되었으면 하여서. 

당신이 걷고 있는 긴 밤의 시간을,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는 함께 걷고 있으며, 

나는 그 시간을 전혀 이겨낸 것이 아니라, 곧 온몸으로 맞닥뜨리며 무릎은 꺾였을지라도 멈추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나는 꼭 장맛비 속을 걷는 사람처럼 항상 몽땅 젖은채로 피할 곳도 모르며 대지 한 가운데 서 있는 사람 같다.

그런 기분을 오랫동안 간직한 채로, 어떤 날은 옷이 조금 마르는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다시 매섭게 파고든다.

그런 날을 지나고 있다. 내게 서른 이후의 삶의 무게는 이십대의 것과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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