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CGV에서 올드보이를 다시 봤다. 참 좋은 작품이라서 수십 번 돌려본 것 같다. 극장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었으나 13년 재개봉 땐 바빠서 못 봤다. 그래서 참 아쉬웠고, 다시 볼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요새 CGV에서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재상영해주고 있었고, 여러 작품을 예매해서 보려고 했으나 너무 빨리 매진되었다. 그나마 올드보이 한 작품이라도 건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기대를 너무 했기 때문일까? 정말 오랜만에 큰 화면으로 다시 보니 예전에 느꼈던 감정이 퇴색되는 것만 같았다.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끊임없이 폭발하는 그런 영화는 스크린에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고, 쉴 새 없이 밀어붙이는 영화였다.
복수와 복수가 만날 때, 복수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을 보며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러티브였다. 박찬욱이 갖고 있는 특유의 매력이랄까. 아가씨만큼은 아니지만 박찬욱만의 미장센 또한 세밀했으며, 분위기를 응축했다가 뿜어내는 것은 여전했다. 그 와중에도 실소를 짓게 하면서 분위기를 잠시 환기하는 유머도 잘 느껴져 좋았다.
낙지와 사투를 벌이는 씬과 롱테이크 격투씬이 참 좋았다. 날것에 대한 박찬욱의 해석이랄까.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남자의 내면과 상황을 잘 설명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상당히 폭력적인 환경에서 폭력을 내면화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어떤 기폭제에 의해 폭발하기도 하기 때문에.
기억과 망각에 대한 것은 생각을 곱씹게 만들었다. 왜 누군가는 기억을 왜곡하며, 다른 누군가는 왜 기억을 망각하는 것일까. 두 인물의 삶의 궤적은 무의식 중에 발현한 자기방어로 비롯된 것일 테다.
생각보다 촬영은 밋밋했다. 아가씨의 정정훈을 보고서 올드보이의 정정훈을 보니 그럴 수밖에. 그럼에도 바로 다음 작품인 친절한 금자씨에 비해서도 꽤 밋밋했다. 금자씨 이후로 현란한 카메라 이동과 다양한 시도들을 보여줬던 정정훈이지만 이땐 아직 그의 진가를 발휘하기 직전인 것 같았다.
근래의 정정훈 촬영이 익숙해져서인지 어색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좋은 촬영이었다. 파랑과 초록을 품은 색은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했고, 암부 표현력이 지금 기준에 미치진 못하지만 뭔가 처연함이 느껴지는 색이었다. 카메라 워크만 밋밋했을 뿐이지 그걸 제외하곤 다 좋았다.
박찬욱의 복수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인 올드보이. 처음 봤던 느낌이 살진 않았지만, 그 기억은 처음 봤기에 형성된 기억일 거다. 올드보이는 여전히 좋은 작품이었고, 기술적인 면모 또한 뛰어난 작품이었다. 친절한 금자씨를 가장 좋아하지만 올드보이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여러 번 돌려봤지만 큰 화면에서 제대로 본 건 10년도 더 넘었기에 새로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건조하게 말하자면 단지 화면 크기일 뿐이지만,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영화의 명작들이 꾸준히 재조명되었으면 좋겠고, 큰 화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