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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니뇨 Feb 14. 2019

Prologue

드라마로 가기 전. 짧은 이야기

 마지막 학기 직전에 인턴쉽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했다. 목표하는 직장은 있었으나 계약직이 아니면 잘 안 뽑는 곳이었고, 그 계약직조차 경력이 없으면 비빌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인턴을 했지만, 경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계약직 면접조차 못 보고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여러 현장을 배회하며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버텼고, 취업 준비를 해야지 해야지 하고는 노력하지 않았다. 


 집에선 모든 엄친아가 그렇듯 나도 어련히 취업할 거란 기대를 하셨던 건지, 타박이 거셌다. 왜 취업을 안 하고 그런 식으로 살고 있냐 시며 많이 나무라셨다. 타박이 쌓여 압박이 되자 역 압박은커녕 탈압박조차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는 상황은 만들어야 했다. 거시적인 계획이 있고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뜻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이런 진부한 말들로 진정시켜드려야 했다. 꼴에 자취까지 하며 학업에 열중하겠다 호언장담한 인간의 말로였다.


 정신을 못 차렸는지 마음이 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혼이 났음에도 무서운 걸 모르는지,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으레 이 바닥 전공생이 그렇듯 프로젝트 단위 계약직을 전전했다. 열정페이는 이미 익숙해진 상태여서 많은 돈을 바라지도 않았고, 주말엔 어김없이 일했다. 가난하게 사는 것과 주말에 일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대신 일은 재밌었다.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니까. 


 어떤 프로젝트에 들어가 일하게 됐다. 친한 감독님의 소개였는데, 날 좋게 봐주셔서 바로 일할 수 있었다. 그땐 그냥 별생각 없이 좋았다. 감독이 온종일 옆에 서서 쌍욕을 해대도 그걸 들어주는 것 또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냥 좋은 오퍼레이터가 되고, 좋은 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감독이 되는 과정인가보다 했다. 


 팀원은 나, 과 선배, 감독 이렇게 셋이었는데, 기수문화가 없는 학교 분위기였고, 선배와 동갑이었기에 누구누구 씨라고 서로 불렀다. 선배인 누구누구 씨는 임신 초기였다. 그래서 내가 많은 일을 하게 됐는데, 불만은 없었다. 근데 선배와 감독은 내가 선배에게 누구누구 씨라고 하는 게 언짢았는지 나중에 자기들끼리 뒷말이 많았던 것 같다. 


 어느 날 감독의 도시락을 챙기지 못한 일을 계기로 터졌다. 감독은 격노하며 나와 선배에게 욕을 퍼부었고, 선배인 누구누구 씨는 일이 끝나고 욕을 뺀 다양한 어휘로 완곡하게 날 책망했다. 뭐 밥이 중요하긴 하지만 난 항상 가장 일찍 와서 가장 늦게 가는 사람이었고, 임신 초기인 누구누구의 일까지 떠맡아서 했는데 이런 말을 두 사람에게서 들어야 하나 싶었다. 꽤 언짢았다. 누구누구 씨는 누가 봐도 나보다 일을 못 했으니까. 


 그다음 날이었나, 감독이 점심시간에 오더니 오늘까지만 일해달라고 했다. 알았다고 했다. 전화로 이 일을 소개해준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사정을 얘기했다. 그분은 자기가 얘길 많이 들었는데, 감독은 위계가 안 잡혀있는 것과 밥을 챙기지 않는 걸 아주 싫어했다고 했다. 뒷말조차 듣기 귀찮아서 손을 털듯 나와버렸다.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후 손가락만 빨고 지내며 월급날만 기다렸는데 페이 지급이 안 됐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이분이 바로 임금체불이란 분이시구나. 한 석 달을 기다리며 주기적으로 그 프로젝트에 있던 감독과 선배에게 전화를 돌렸다. 돌아오는 건 친절을 가장한 욕이었지만 난 어쩔 수 없었다. 


 다른 프로젝트도 알아보고 돈 벌 궁리를 다양하게 해봤다. 소식이 없자 기다리다 지쳐 친한 대학 동기에게 일자리를 물어보게 됐다. 무슨 이상한 자존심이 있었던 건지 쪽팔렸다. 그 친구는 방송 쪽에 있었는데, 바로 일자리를 구해줬다. 과 동기의 후임자로 들어가는 거였다. 그렇게 대학 동기의 소개를 통해 과 동기의 후임자로 드라마 팀에 들어가게 됐다. 면접은 그냥 인사 정도로 간단했다. 딱히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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