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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Jun 11. 2023

다만, 사랑하는 마음만 남기고

영화 애프터썬(Aftersun)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게 좋아
그게 무슨 뜻이야?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거든. 그러다 태양이 보이면,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단 사실을 떠올려. 비록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 같은 하늘 아래 아빠랑 내가 있는 거니까... 그럼 같이 있는 거지      



캠코더를 튼다. 소피는 11살 여름,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되돌려본다. 관객들은 소피의 기억과 캠코더의 기록에 의존해 그 시간들을 경험한다. 이 영화는 어린 소피의 눈에 포착된 장면들로 얼기설기 편집을 한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시작하고 아빠와 작별 인사를 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기승전결 없이 일상의 기억들을 조각보처럼 붙여놓은 것처럼 보인다.      



눈부신 바다, 흥겨운 음악, 마주 보며 웃는 연결의 순간들. 오랜만에 만난 부녀의 평화롭고 즐거운 일상이다. 그런데 어쩐지 아슬아슬하고 묵직한 고통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빠는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지만, 종종 저 너머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카펫은 사연이 담겨있대. 이 상징과 문양이 각각 다른 걸 나타낸대."



어린 소피는 아빠가 궁금하다. 어른이 된 소피도 여전히 궁금할 것 같다. 아빠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11살 때 30살엔 뭐 할 거라 생각했는지’ 묻는 내 질문에 왜 답하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족이라고 하면서도 왜 헤어진 것일까. 아빠가 카펫에 그렇게나 마음을 주던 이유는 뭘까. 명상 책을 읽고, 이상한 동작(태극권)은 왜 했던 걸까. 5살 때는 나랑 춤을 잘 췄는데 11살 때는 왜 하기 싫어했을까. 나는 내 고향에 소속감을 느끼는데, 아빠는 왜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다고 할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11살 아빠의 생일, 장난감 전화기를 선물로 사달라고 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수천번 돌려보았을 기억의 조각들. 어른이 되니 지난 시간 속의 아빠가 다르게 보인다. 그런데 어른으로써 인간 대 인간으로 아빠를 바라보려 해도, 역시나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빠는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서도, 생각보다 자주, 홀로 외로이 통곡하듯 울었을 것 같다는, 짐작만 해볼 뿐.






소피, 정말 사랑해. 그건 절대 잊지 마, 아빠가.     



추억의 소품인 캠코더, 카펫, 엽서, 기억만으로 아빠를 이해할 순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느껴진다. 아빠가 나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 아빠와 함께하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그때를 만져보고 싶다. 꽤나 오래된 일이라 눈물이 흐르진 않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듯하다. 반짝이던 풍경, 그 속에 있던 아빠와 나, 그때, 그 사랑이.             




애프터썬(Aftersun, 2023) / 영화 / 영국 / Charlotte We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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