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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Feb 01. 2023

부질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내가 아는 거라곤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나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땐..     



팍팍한 현실을 꾸려가느라 전쟁 같은 날들을 보내는 엄마 에블린. 스스로 선택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양 이 꼴로 쪼들리며 사는 걸 택한 적은 결코 없다. 여력이 없으니 마음이 곱게 써질 리 없고, 나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도 무관심해진다. 그런 그녀와 거친 현실 속에서도 즐겁게 살아보려 버티는 남편 웨이먼드, 대화가 단절된 채 깊은 무망감을 안고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버린 딸 조이. 이 이야기는 위기의 가족이 다시 서로를 품에 안고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는 가지 않은 길을 이 영화에서는 ‘멀티버스’라는 은유를 활용하여 참신하고 사랑스럽게 보여준다. 립밤을 먹거나, 바지에 소변을 지리는 등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하며 ‘다른 차원의 나’를 만나 초인적 힘을 얻으며 악당들을 물리친다.


다른 차원의 에블린


‘다른 차원의 나’를 겪어보니 그냥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은데, ‘이 차원의 나’로 돌아와서 밀려오는 악당들을 물리쳐야만 한다. 가지 못한 길 위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이 차원의 나’를 보니 현실의 비루함에 깊은 슬픔이 차오른다. 그녀는 ‘다른 차원의 내 모습들’과, ‘이 차원의 나’를 오고 가며 그간 생존에 매몰되어 미처 보지 못했던 남편과의 관계, 딸의 마음속 무망감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기분 좋지 않아? 다 부질없는 거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괴로움과 죄책감이 사라지잖아."


이 차원, 저 차원 돌아다녀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싸움의 목적은 악당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를 포함한 내 세상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딸의 영혼을 잠식시켜 버린 악덩어리는 사실 그녀 자신이 만들어냈다는 것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그 악덩어리의 내용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기로 한다.      


"당신이 또다시 내게 상처를 준대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어. 다른 생에선 당신과 함께... 빨래방도 하고 세금도 내며 살고 싶어."


다른 선택지를 골라, 다른 차원의 나로 살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곳에서의 비애와 고통이 왜 없겠는가.  여배우를 선택했던 삶 속에서 그녀는 우연히 웨이먼드와 재회하여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는 그녀에게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쉬움을 담아 고백한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당신과 빨래방을 하고 세금을 내며 살겠다는 것. 이 얼마나 사소하고도 귀한 사랑인지. 결국 ‘다른 차원의 웨이먼드’가 ‘이 차원의 웨이먼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비로소 나와 내 남편, 딸, 그리고 주변 이웃들이 겪고 있는 외로움과 헛헛함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나의 선택이 그 결과까지 선택한 것은 아니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 결과 또한 받아들이려 한다. 어디에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지만, 이 부질없는 세상을 다정함으로 견디며 함께 살아나가겠노라고.      



난 너랑 여기 있고 싶어. 언제까지나. 너와 여기 있고 싶어.
뭐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 왜 그런 곳으로 가지 않는 거야? 이곳은 그래봐야 상식이 통하는 것도 한 줌의 시간뿐인 곳이잖아.
그럼 소중히 할 거야. 그 한 줌의 시간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 영화 / 미국 / Daniel Kwan, Daniel Schein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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