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이프 인 어데이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나요?
당신은 무엇이 무서운가요?
이따금씩 중학교 1학년 때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버스에서 창가를 바라보며 ‘저 사람은 지금 어딜 갈까? 어떤 하루를 살까?’ 생각했던 순간. 그다지 강렬하거나 독특한 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이 왜 이리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인지. 타인의 삶을 엿보고 싶은 마음은 사실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인지도 모르겠다. ‘라이프 인 어 데이’는 그런 나의 의문에 친절히 답을 해주는 다큐멘터리다. 2010년과 2020년의 어느 하루, 지구인들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침대, 텐트, 마당, 바다. 세상의 여러 곳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생리 현상을 해결하고,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가축의 젖을 짠다. 두바이에서 정원사로 일하며 고향에 돈을 부치는 가장,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커밍아웃을 하는 남자,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는 남자, 갓난아기에게 시를 읽어주다 방해된다며 부인에게 혼나는 남자, 백발 부부의 시끌벅적한 금혼식, 아픈 엄마를 웃게 하려는 아이, 주말임에도 종일 일했다며 별일 없는 오늘에 아쉬워하는 여자... 저마다의 하루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펼쳐진다.
일상 속에 묻어있지만 직면하기 싫은 삶의 그림자들까지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사람들의 양식으로 도축되는 동물, 코로나19로 사랑하는 이를 빼앗겨 슬픔에 잠긴 가족들, 구두를 닦아 돈을 버는 꼬마, 병마와 싸우는 이들, 마땅한 비용을 치르지 않고 도시를 활보하는 청년까지. 가치, 도덕, 판단의 시선을 모두 내려놓고 보아도 차마 제대로 직면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급작스레 나타나 당황스러워지기도 한다.
기쁨, 슬픔, 절망, 희망, 환희, 두려움, 행복, 공포, 수치, 실망, 분노, 무기력,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각자에겐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인데, 희한하게도 모아보니 특별해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분명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인데, 또 그렇지만은 않은 순간들이다. 한 사람, 한 생명체 안에 이토록 새로운 세상이 담겨있다니 새삼스럽다. 어떠한 대상과 현상을 오롯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깊이 체감된다.
한없이 아름답고 귀여우며 사랑스럽지만, 끝없이 쓸쓸하고 고통스러우며 비극적인 순간들. 지구인들의 하루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는 이 길의 과거를 묻고 싶어 진다. 앞으로 쌓여갈 무한한 나날들을 헤아릴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시간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며 그저 살아나갈 뿐이리라.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인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니?
우리 뇌를 연결할 거예요. 그러면 죽어도 서로 대화할 수 있잖아요.
그렇구나. 안아보자꾸나. 사랑해, 우리 아들.
저도 사랑해요.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라이프 인 어 데이(Life In A Day, 2011, 2020) / 다큐멘터리 / 미국, 영국 / 케빈 맥도널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