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어의 정원
어차피 인간은 다들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니까....
소년은 스스로의 힘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일찍 철이 들어버린 어른 아이다. 자녀들에게 의존하며 기분에 따라 가출해버리는 엄마, 자기 페이스대로 살며 미성년자인 동생에게 무관심한 형. 그 틈바구니에서 소년은 집안일을 하고, 알바를 하며 하루를 꾸려나간다. 구두를 디자인하는 것에 흥미가 있고, 직업으로도 해보고는 싶지만 구체적인 것은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다. 일탈이라면 비 오는 날 1교시는 공원에 앉아 구두 디자인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간다는 것 정도.
그녀는 과거의 상처를 어찌하지 못한 채 휘청거리는 어른이다. 그 일이 있은 이후 홀로 제자리를 맴도는 것만 같고, 가장 가까웠던 사람도 멀어져 버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탈은 비 오는 날 출근을 하지 않고 공원에서 맥주와 초콜릿을 먹는 일 정도. 미각을 상실할 정도로 버거운 그녀에겐 살고자 하는 최선의 선택이다.
비 오는 날마다 소년과 그녀는 비판단적으로 자기 자신과 서로에 대한 순수한 관심을 나누게 된다. 그녀는 다른 어른들처럼 10대의 목표란 것이 여러 번 바뀌는 것이라는 등의 조언 따위를 하지 않았고, 그저 머물러 있을 뿐. 소년은 걷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걷고 싶어질 구두를 만드는 것으로 그녀에게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가깝게 다가가고자 한다. 생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마비되어 있던 그녀도 소년이 손수 만들어 온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서서히 미각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 나도 모르게 비가 오기를 빌고 있었다. 맑은 날에는 내가 몹시 아이 같은 장소에 있는 것 같아서 그저 초조하다. 직장이나 사회 같은 그 사람이 평소에 있을 듯한 세계는 나와는 무척이나 멀다. 그 사람에게 있어 나는 분명 그저 어린애일 뿐이라는 것, 구두를 만드는 일만이 나를 다른 장소로 데려다 줄 거라는 점.
제대로 맛이 느껴지는 거야. 그 사람 도시락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코올과 초콜릿 말고는 맛을 못 느꼈거든.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어주는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 순간들은 소년이 미처 깨닫지 못한 외로움을 녹여냈고, 상처로부터 떨어져 얼어있었던 그녀의 아픔을 어루만졌다. 소년은 자신이 세상에 나아가기에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도 비로소 상처에 가까이 다가설 용기가 생기고, 맨발로 세상의 감각을 힘껏 느끼며 걸음마를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소년이 만들어준 구두를 신고 훨훨 걸어 다니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보며 뿌듯해하는 소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때는 비가 오지 않아도 마음껏 서로에게 머무르며 지금보다 다채롭고 깊어진 세상의 맛을 공유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으리라.
언어의 정원(The Garden of Words, 2013) / 애니메이션 / 일본 / Shinkai Mak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