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순천(Splendid but Sad Days)
주황빛 사진 한 장에 이끌리듯 이 다큐멘터리를 열었다. 지루한 듯 이어지는 어느 70살 먹은 할머니의 억척스러운 일상.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를 일구어가는 모습과 순천의 무심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이 대비되며 어느 순간엔가 먹먹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바다가 있어 고기를 잡았고, 한창 때는 하루에 십만 원도 넘게 벌었다며 바다로 나가는 길이 무서워도 그저 감사하다고 한다. 한평생 일을 모르던 남편과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할머니의 말마따나 ‘전국구로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지만, 그럼에도 고된 현실을 꾸려온 지난 시간들이 그녀에게는 삶의 동력이자 훈장이었다.
말뚝은 햇볕이 날 때 칠해야 잘 마를 텐데, 비가 올 듯 말 듯하더니 결국 내리기 시작한다. 이것들을 어디 놔둘 곳도 없는데 어쩌나, 언제가 되어야 다시 바짝 마르려나.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쯤은 할머니도 알고 있다. 주절주절 내놓는 말들 속에 그녀가 그간 겪어왔던 숱한 좌절들이 비릿하게 묻어있다.
고기잡이는 십만 원도 벌다, 이십만 원도 벌다, 오만 원도 벌다, 삼만 원도 벌다 이래도 이게 큰 숫자다, 이것이. 큰 숫자. 그러니까 나는 이러고 저러고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해.
할머니는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 무엇이든 그런가 보다 하고 수용한다. 안달복달 속 끓이고 남몰래 우는 날들이 왜 없었으랴만,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태풍이 오면 오는 대로, 주어지는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며 ‘이러고 저러고 그냥 산다’.
어장에 오면 백로라든지 갈매기들이 많이 있어요. 가르쳐줘요, 새가. 새가 그물에 가만히 달려 있잖아요? 그럼 그때는 고기가 있어요. 고기 뜯어먹으려고. 새나 사람이나 똑같이, 순천만은 그렇게 산다고요.
새와 더불어 고기를 잡으며 흘러가는 순천의 순간들을 보고 있자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나날들을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우리의 모습과 꼭 닮아있어 어쩐지 애처롭고도 다정한 마음이 밀려온다.
순천(Splendid but Sad Days, 2014) / 다큐멘터리 / 한국 / 이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