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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Dec 16. 2023

축복을 줄게, 그러니 걱정하지마

영화 별을 쫓는 아이 & 스즈메의 문단속



Hello, Goodbye and Hello
너와 만나고, 이제는 너와 이별
Hello, Goodbye and Hello
그리고 네가 없는 이 세계에 헬로

- 별을 쫓는 아이 OST, Hello Goodbye & Hello, Song by 쿠마키 안리      



두 영화는 모두 죽음과 상실을 다루고 있다. <별을 쫓는 아이>는 상실에 대한 거부, 슬픔, 그리움 등 고통감을 겨우 껴안으려 시도한다면, <스즈메의 문단속>은 상실의 상자를 열어 꼭꼭 씹어 소화시킨 후 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둔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간호사 일로 바빠 혼자 지내는 것이 일상인 ‘아스나’.  ‘내가 있고 싶은 곳은 여기가 아닌 것 같은’ 적막한 공기를 견디는 이 소녀는 (그 자신은 모르는 것 같지만) 닿지 않는 별을 쫓듯 누군가와 연결되길 원한다. 아스나는 어딘가 신비로운 면이 있는 ‘슌’과 만나 마음을 나누지만, 소년은 갑작스레 사망하게 된다. 아스나는 슌이 죽었다는 것을 도무지 믿기 어렵다.



상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아내를 되살리는 것이 삶의 전부인 모리사키다. 아스나는 슌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아가르타(지하세계)로 떠났다면, 모리사키는 아내가 떠난 이 세상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이다.      



슌, 아스나, 모리사키 선생


축복을 줄게. 네가 살아있었으면 해. 원하는 건 그게 다야.  
아스나, 나는 네가 살아있길 바라.


슌과 모리사키가 줄 수 있는 축복의 말이 한결같이 ‘살아있길 바란다.’ 라니. 살아있는 것 자체로 축복이라는 것일까? 할 수 있는 건 살아있는 것뿐이라는 무력함일까? 살아있으면 그래도 무언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일까? 아마도 저들이 주는 축복은 차마 견디기 버거운 상실의 고통을 그래도 힘껏 끌어안아보겠다는 안간힘과 비슷한 것 같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대지진으로 엄마와 이별한 스즈메의 이야기다. 너무나 위협적이기에 차마 직면하기 어려워 문 저편에 놓아둔 그 기억. 크레파스로 까맣게 칠해진 그날 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 거칠고 필사적인 몸의 감각. 엄마를 찾아 거리를 헤매던 4살 꼬마는 16살이 되어서야 그때를 제대로 만나러 간다.      



눈을 감고 이 장소에 있었을 수많은 감정을 상상하며 목소리를 듣는 거야.      



폐허가 된 곳의 문을 닫기 전, 그 장소에 있었던 소리를 듣고 열쇠로 잠그면 문단속은 끝난다. 여러 문들을 닫으면서 스즈메의 기억 속 장면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어머니의 유품이었던 의자와 함께 싸우는 이 기묘한 여행은 의자를 들고 거리를 헤매던 꼬마 스즈메와 다르면서도 꼭 닮아있다.      





울고 있는 어린 스즈메에게 오늘의 스즈메가 말을 건다. 더 이상 상실로부터 도망치거나 슬픔의 늪에 자신을 버려두지 않는다. 스즈메는 곁에서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용감하게 살아낼 수 있었단 사실도 깨닫는다. 마침내 트라우마적 상실을 처리하여 통합시킨 스즈메는 잃어버렸던 기억을 제대로 저장하며 어머니의 사랑도 온전히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언니는 누구야?"  "나는 스즈메의 내일이야"



지금 아무리 많이 슬프다 해도 스즈메는 앞으로 씩씩하게 클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미래 따위 두렵지 않아. 너는 앞으로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거고 너를 사랑해 주는 많은 사람들도 많이 만날 거야. 지금은 세상이 온통 깜깜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아침이 올 거야.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되어갈 거야. 반드시 그렇게 된단다. 그건 확실하게 정해져 있어.



돌아보면, 우리의 삶도 아스나처럼 적막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슌처럼 허무하고, 모리사키처럼 사무치는 날들의 연속이다.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잃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친절한 마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니, 알 수 없는 우리의 내일에게 ‘아스나가 받았던 축복의 말’과 ‘스즈메의 오늘’을 살포시 놓아본다.


      

네게 축복을 줄게, 네가 살아있었으면 해. 지금 아무리 많이 슬프다 해도, 언젠가 반드시 아침이 올 거야. 반드시 그렇게 된단다. 그건 확실하게 정해져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별을 쫓는 아이(Children who Chase Lost Voices from Deep Below, 2011)
스즈메의 문단속(Suzume, 2023) / 애니메이션 / 일본 / Shinkai Mak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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