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구름 Jun 04. 2024

세상과의 관계 맺기

다큐 내언니전지현과 나




이 안의 캐릭터들은 다 사람이거든. 그런 면에서 나는 절대 가상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아플 때 내언니전지현 캐릭터를 병원에 넣어놔. 뭔가 좀 낫는 것 같아.  - '내언니전지현'님 인터뷰 중



1999년 출시된 고전 게임, 일랜시아. 태초에 이곳은 ‘누구든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곳’이었다. 성별과 피부색만 고르면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진로를 선택하고 쉽게 바꿀 수 있으며, 레벨이 아닌 어빌리티(능력)로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사냥을 하고, 요리를 하고, 낚시도 한다. 물고기를 잡다가 허탕을 치면 누군가 빠트린 물건들을 주워 올리기도 한다.   


  

운영진이 돌아오지 않아 무법지대가 된 일랜시아 세상. 불안정한 서버 상태를 활용해 누군가는 도박장을 운영하고, 누군가는 악성 버그로 게임을 방해한다. 심지어 매크로를 활용하지 않으면 도저히 게임을 이어나가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매크로가 공용이었으면 좋겠어요. 누군 손으로 사냥하고, 누군 가만히 있어도 사냥이 되고. 조금씩 바꾸었어야 하는데. 이미 모든 게 잘못된 상태에서 바꾸려면, 더 엉망이 되잖아요.  - '포켓보이'님 인터뷰 중    



검증된 루트로 가는 것만이 확실한 길을 보장해 준다. 노력이나 계획 같은 행위들은 한없이 하찮아지고, 원칙을 찾으려는 의지는 무모하다며 비웃음을 당할 것 같다. 불필요한 좌절을 최소화해야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생’과 다르지 않은 이 지독한 일랜시아 세상에서 왜 전파 낭비를 하며 남아있을까?     



(좌) '공아지'님의 노래를 듣는 '에이치우딘'님 (우) 친구들과 열기구 타고 여행 중



노래를 듣는다며 눈 맞추고 있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여러 유저들에게 일랜시아 세상은 팍팍한 현실을 달래주는 피난처다. 하루종일 아무 노래나 마구 부르고, 빈둥빈둥 하프를 연주하고, 놀이동산 투어도 간다. 친구들과 빙글빙글 열기구를 타는 시시한 놀이만으로 하하 호호 웃으며 기분이 나아진다.         



기쁨과 위안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결코 큰 욕심은 아닐진대, 그것을 지켜가는 과정은 너무도 험난하다. 다큐는 ‘운영진에게 버림받은 일랜시아가 망가지는 것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작은 게임 세상이 도대체 어떤 것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지 여러 관점들을 취합해서 보여준다.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게임 세상-유저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우리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자본주의 구조와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우리’는 이대로 이곳이 망가지도록 둘지, 계란으로 바위를 치더라도 무엇이든 해볼 것인지를 고민하는 수밖엔 없다. 결국 ‘유저들’은 ‘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생각하며 기꺼이 행동해보고자 한다.

     


미용실 손님에게 스타일링을 해주고 기념사진 찍는 중



언젠가 이곳을 과거의 유물로 간직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무엇이 소중한지 선명히 알고 있다는 것,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씩씩하게 나아갔던 기억이 마음에 묻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더 살만한 ‘현생’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당연하지 않은 사소한 기쁨들은 어딘가에서 어떤 형태로든 다가와 마침내 또, 우릴 다시 웃게 하리라.





내언니전지현과 나(People in Elancia, 2020) / 다큐멘터리 / 한국 / 박윤진
매거진의 이전글 축복을 줄게, 그러니 걱정하지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