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태원 Taewon Suh Nov 23. 2021

미니멀리즘

Erik Satie vs. Aphex Twin

엄밀한 의미의 계보학은 인간의 복잡한 경험과 상호작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기도 합니다. 클래시컬한 접근방식으로 하나의 명확한 계보에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는 경우도 있으며 그것이 존경할만한 일인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이 항상 가장 뛰어난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는 계승의 결과이기보다는 창조적인 파괴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퓨전과 크로스오버 혹은 통섭을 지지하는 시각의 글입니다. 개개인의 의도에 의한 세상의 흐름에 대한 영향력은 사실 미미합니다. 다양한 의도와 실천이 섞여서 역사의 단체적인 한 흐름을 이끕니다. 또한 이 도도한 흐름에는 다양한 비의도적인 결과가 중첩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정통성 혹은 순종성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어떤 비개인적인 흐름을 개개인의 단일한 연결에 회귀시킨다는 것은 상당히 큰 오류를 발생할 가능성이 큰 일인 것입니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형식의 음악이 매력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하게" 통칭해서 미니멀리즘이라고 하지요. 이 명칭이 1960년대 클래시컬 뮤직 씬에서 유행했던 the 미니멀리즘 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미니멀리즘에 큰 영향을 미쳤던, 20세기를 전후로 활약했던 에릭 사티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Gymnopedies로 대표되는 프랑스 음악가 에릭 사티는 그의 비전형성과 독창성으로 20세기를 열었던 중요한 인물입니다.


비전형적이고 독창적이라고 하는 것은 곧 개념적 융합을 해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누구의 제자다, 누구의 계승자'다 하는 말이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그가 얻었던 모든 경험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Gymnopedies를 만들어낸 그의 경험을 분석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19세기 그가 젊었을 시절 그는 한동안 Rosicrucian라고 하는 비전(秘傳)의 종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비밀스러운 종파는 신비스러운 제례를 강조하기 마련입니다. Gymnopedies란 단어도 스파르타의 제례적인 누드 댄스 페스티벌을 의미합니다. 에릭 사티는 짧은 기간 동안 위의 종파를 위해 음악을 작곡하곤 했습니다. 따라서 Gymnopedies가 이러한 상황과 경험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논리적일 것입니다.


[Gymnopédies No. 1] by Erik Satie


이러한 에릭 사티와 Gymnopedies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는 21세기의 대중 음악가 Aphex Twin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 [Avril 14th]은 21세기 대중문화의 에픽이 되었습니다. Kanye West의 [Blame game]의 모티브이기도 합니다. (이 곡은 Disklavier란 자동 피아노 시스템을 이용해 인간의 터치 없이 녹음된 피아노 곡입니다. 음악적 청각이 예민하신 분들은 이것이 기계적인 사운드임을 알아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장르적으로 에릭 사티와 에이펙스 트윈스 간에는 큰 이질감이 있습니다.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인 에이펙스 트윈스의 음악은 대개 IDM [Intelligent Dance Music]이라고 하는 실험적인 테크노 넘버입니다. 따라서 장르 계보학의 신봉자에게는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모든 전제를 내려놓고 그의 음악을 듣는다면 에릭 사티와 에이펙스 트윈스의 연결은 뚜렷하고 명백합니다.


[Avril 14th] by Aphex Twin


미니멀리즘의 특징 중의 하나는 특정 코드의 반복입니다. 반복은 기본적으로 제례적인 느낌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점은 컨템퍼러리 뮤직의 메인스트림인 록 뮤직의 기원과 동일한 뿌리에 대한 것입니다. 현대 대중음악의 대개 모든 장르의 혹은 음악 자체의 기원이 사실상 그러한 뿌리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일반화된 결론일 수도 있습니다. 한 이론적인 주장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십시오.)


상업적인 디스코 록의 예, [I feel love] by Donna Summer


세상을 살다 보면 '모든 다양성은 하나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변종일뿐이다'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립된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편을 가르고 반목하는 것은 바로 자신에게 침을 뱉는 행위일 수도 있겠습니다.



*Title Image: [Jeunes filles au bord de la mer] by Pierre Puvis de Cahvannes in 1879. 에릭 사티의 Gymnopédies 작곡에 영향을 주었다고 추측됨.  

작가의 이전글 [워라밸]의 대안적 개념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