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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runch Nov 22. 2016

대학원생인 내가 양궁을 배우는 이유

대학원 버텨내기, 그 시작

“다음 학기 뭐 들어?” “통계, 세미나, 그리고.. 양궁” “양궁?”


박사과정 하러 대학원 가서 왠 양궁 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내게 이 수업은 전공 수업 만큼이나 중요했고, 결과적으로 대학원에서 버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사실 꼭 양궁일 필요는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와 주변의 동료 대학원생들이 들은 소위 “노는” 수업을 꼽자면 라켓볼, 와인, 수영, 버섯 캐기, 발요트 타기, 요가 등등 아주 다양하다. 그럼 왜 이런 것들이 전공 수업만큼 중요할까? 졸업하는 데에 시간을 빼앗는 것은 아닐까?


대학원은 마라톤

나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의 경우 보통 박사 학위를 따기까지 5-6년이 걸린다. 학부 때 한 학기 내내 자신을 밀어 부치고 방학 때 주저 앉아 쉬면서 재충전 하는 그런 시스템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번아웃 (burn out) 증후군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박사과정을 흔히 속도 조절해야 하는 마라톤으로 비유하곤 한다. 이 마라톤을 뛰면서 연구 외의 생활을 가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그 이유는 바로 박사과정 학생이 일과 연구를 자신의 인생과 동일시 하기 쉽기 때문이다. 


왜 이게 문제지? 학자라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게 아닐까? 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장담하건데 대부분의 박사과정생들의 연구는 적어도 한 번은 망하거나 정체되게 된다. 그 때 박사과정을 자신의 인생과 동일시 하던 사람들은 일이 안 풀릴 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게 된다. 인생이 끝날 것 같고, 앞의 길이 보이지 않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는 그 때.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겪어봤거든.


마음이 감기에 걸리다

나는 어릴적부터 공부를 꽤 잘 하는 편이었다. 대학원을 가는 것도 그래서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진 순리인양 생각했고, 좋은 (=잘 알려진) 학교를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남들이 종종 겪는다는 사기꾼 증후군 (Imposter syndrome)을 느끼지 못했으며, 같이 일한 교수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았다. 무서울 게 없는 날들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석사 시험을 치고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데에서 빠꾸를 먹었다. 박사 과정으로 진학해도 되지만 조건이 붙은 패스를 받은 것이다. 하늘이 노래졌다. 내 자신이 부정당한, 혹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에서 깨면 다시 자고 싶었고, 깨어 있을 때도 괜찮은 척 돌아다녔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이 주위에 많이 없을 때 였고, 나의 치부를 들키기 싫어 아무에게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었다. 학교 보건실에서 상담을 받으며 깨달았다, 나의 행복이 일에 저당잡혀 있었다는 것을.


너 혼자가 아냐

그 때 부터 나의 학교 밖 인생도 가꾸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중 몇 몇은 친한 친구가 되었다. 동네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멀리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매주 요가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와인 한 병을 따서 사랑하는 사람과 열심히 마시고 있다. 일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양의 일, 나의 한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가장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려 노력했다. 자연스레 대학원생의 정신 건강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나의 문제가 다른 사람들도 자주 겪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대학원에 들어가나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지만, 막상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 잘 버텨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뒤, 'Happily ever after’라는 자막이 뜬 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물론 정답은 없고, 사실 내가 찾은 답이 다른이에게 도움이 될 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내게 도움이 되었던, 그리고 이 고된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팁들을 공유하고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양궁이나 그들만의 '노는 수업' 혹은 '노는 시간'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대학원생 분들이 있다면 생각을 나누어 주시길! 연대 함으로 같이 이 시기를 버틸 수 있길 조심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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