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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Brunch May 24. 2017

대학원 버텨내기: 앎의 네 단계

지금 아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예전에 대학원에 관련된 글을 찾으러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한 번 맞닥드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출처는 찾을 수가 없으나 내 original thinking은 아님은 밝히고 싶다). 그 글에서 대학원생이 학위를 따기 위해 통과하는 4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각 단계는 다음과 같다 (괄호는 내가 재미있으라고 적어넣은 것임).


1.  You don’t know that you don’t know: 모른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2. You know that you don’t know: 모른다는 것을 (비로소) 안다
3. You don’t know that you know: 안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4. You know that you know: 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밑의 글은 내 개인적인 경험을 여기에 덧붙인 것이다.


1.  You don’t know that you don’t know: 모른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대학원 원서 준비할 때부터, 인터뷰하고 , 합격해서, 비로소 학교에 나타난 뒤 첫 몇 달 동안 보통 이 단계를 거치는 것 같다.  원서 작성할 때 내가 얼마나 과학을 사랑하고 과학에 열정적인지 적어내려가면서 덩달아 과학이 무엇인지 안다고, 나는 꽤 괜찮은 과학자라고 착각하게 되는 때가 있는데, 이 때엔 자기가 얼마나 모르는지 조차도 모른다. 지금에서야 생각하건대 추천서가 아마 학생이 붙느냐 아니냐의 당락을 좌우할터인데 그 당시엔 그저 나의 힘과 실력으로만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이 착각은 학교에 방문해서 하는 인터뷰들을 가보며 더 커지게 된다. 대학원들이야 사실 거기서 거기라 학교는 능력있는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들여 비행기표와 숙박비를 대 주면서 지원자들을 부른다. 그 뿐인가, 몇 몇 학교는 리무진을 보내 인터뷰이들을 공항에서 픽업하질 않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여주지 않나, 이건 무슨 교수 인터뷰인지 대학원생 인터뷰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 소위 말하는 wine and dine (일종의 접대?) 방문 인터뷰를 거치면서 ‘내가 과학을 좀 아니까 학교에서 이렇게 나를 대접하려고 불러주는 구나’, 하는 자만심은 커져만 간다. 물론 곧 2단계가 시작되면서 그런건 가을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사라져버리지만…


2. You know that you don’t know: 모른다는 것을 (비로소) 안다

학교에 도착해서 적응기를 거치면 비로소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쟁쟁한 동기들과 선배들과 교수들에게 둘러싸여서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고, 남들 앞에서 아는 척 하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정도가 지나치면 Imposter syndrome (사기꾼 증후군)에 시달릴 수도 있다. 사람들의 기대나 믿음만큼 본인이 일 처리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경우 자기가 사기꾼이라고 느껴지면서 다른 사람들의 나의 본 모습을 알아버리는 건 아닐까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이미 성공한 사람인 페이스북의 쉐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도, 내 주변에 잘 나가고 있는 것 같은 과학자들도 이 증후군의 포로인 걸 보면 이 시기는 3단계나 4단계로 넘어가더라도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닌 것 같아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들은 3단계나 4단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른다고 하면 몰라도, 니가 나보러 내가 모른다고 하면 기분 나쁘다고!



3. You don’t know that you know: 안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4. You know that you know: 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나는 올해 (지금 박사 4년차)에서야 이 두 단계가 어떤 것인지 약간 감이 잡힌다. 꽤 오랫동안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는 것도 잊어먹는 바보라고 내 자신을 닥달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그래도 지금까지 공부하는 동안 쌓아온 거라도 있는지 올해 중반 부터 나도 가끔 깜짝 놀랄 정도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문제를 제기하거나, 논문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다른 과나 랩의 학생이 무슨 테크닉에 대해서 물어보는 경우도 생겼고, 남의 랩미팅에 가서 이런거 이런거 생각해봤냐고 훈수(?)를 두기도 한다. 그리고 남들이 겉으로 보기엔 대단한 걸 말한 거 같은데 따지고 보면 별 알맹이 없는 얘기를 한다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도교수와 비교하면 택도 없고, 졸업을 위해 마쳐야 하는 일은 산더미지만, 이래서 4년차 때 포텐이 터진다는말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애기가 말을 배울 때 한 마디도 안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터지는 것처럼!

하! 다 덤벼!


나이만 먹었다고 생각되던 요즘. 빨리 해치워서 졸업해야지 마음만 급하던 때에 사무실 벽에 붙여놓고 되내이는 말이 두가지 있는데,


첫째는 ‘급할 수록 돌아가라’, 이고


둘째는 문화심리학자/화가/작가 김정운이 한 이야기이다.


‘주체적인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 관심사를 끊임 없이 공부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끊임없이 좋아하는 걸 공부하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다. 내 실력이 끊임 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 자신 있다.’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은 억누르고, 그냥 꾸준히 열심히 하다보면 4단계에 편안히 안착해있지 않을까? 졸업할 즈음에 ‘그래도 내가 뭘 좀 알긴 알아’라고 씩 웃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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