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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빈 Mar 20. 2020

#46. 서점 옥상에서 요가를 하다, 원데이 클래스

Chapter3. 얼렁뚱땅, 요가 강사

나는 모태 새벽형 인간이다. 어릴 적부터 일찍 일어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자랑이 아니다. 그저 모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덕이다.) 늦잠 자는 자식들에게 일어나 밥 먹으라고 닦달하는 부모님, 알람을 여러 차례 끄고도 일어나지 못하는 직장인 등.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는 이러한 일들이 내 경우엔 해당 사항이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 자랑이 아니다. 어쩌다 밤새 놀고 들어와도 잠을 자지 못한 채 다시금 하루를 시작해야만 하는 불쌍한 운명이다.)
 

대신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초저녁부터 잠들기 일쑤고, 밤샘 작업은 거의 불가하다는 것. 그 때문에 저녁 시간에 대한 애정이 적은 편이지만, 지난밤이 아쉬운 계절은 있다. 바로,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가을. 그 때만이 지닌 청명한 어둠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종종 밖을 나서곤 한다. 서점 옥상 요가 수업을 진행한 서점 리스본과의 인연은 거기서 시작됐다. 완연한 가을인 9월, 이내 지나가 버릴 가을밤을 즐기기 위해 나는 서점 리스본에서 진행되는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낯선 이들과 서로 다른 책을 읽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을 즐기던 어느 밤, 사장님께서 “겨울이 오기 전에, 서점 옥상에서 요가 수업을 해도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황금단추에서 진행하는 개인 수업을 잘 이어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홍보’가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였기에 내겐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가을의 끝자락 10월에 연트럴 파크가 내다보이는 서점 옥상에서 두 차례 원데이 요가 클래스를 진행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오가는 장소인지라 요가 수업은 공지가 되자마자 재빠르게 등록 마감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선생님으로서의 나의 역할이었다.


일요일 오전 옥상 요가(@서점 리스본 포르투, 연남동)


원데이 클래스의 특성 상 어떤 분들이 수업에 오실지 몰라 수련 시퀀스는 요가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즐기며 따라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서점 옥상에서 진행되는 만큼 너무 정적이지만은 않게, 몸의 구석구석을 주먹으로 때리고 굳어 있는 부분은 발로 지그시(?) 밟아 주기도 하면서. 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수련생들의 웃음소리, 고통에 비명 지르는 악 소리가 교차된 70분이었다. 매트 위에 누워 사바아사나를 할 때, 잠시나마 고요해진 틈은 지저귀는 새 소리와 새파란 가을 하늘이 대신 채워줬다.



옥상에서 수련을 마친 뒤엔 1층 앞마당으로 내려와 그 주의 감사 일기를 썼다. 서점에서 열리는 수업이라 수련만 하고 헤어지기엔 아쉽기도 했고, 내가 매일 감사 일기를 쓰며 받은 혜택을 수업에 오시는 분들과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은 마음에 준비한 시간이었다. 그 마음이 통했던 걸까.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굉장히 진지하게 임하셨다. 감사함의 모양은 모인 분들 만큼이나 다양했고, 그 무게 또한 가늠되지 않을 만큼 특별했다. 돌아보니, 요가 동작을 가르친 시간보다 감사 일기를 쓰고 각자의 이야기를 수줍게 주고받던 그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때 멍하니 둘러본 서점 주변의 이국적인 풍경까지도.


일요일 오전 옥상 요가(@서점 리스본 포르투, 연남동)


여행이 별건가. 이렇게 일상을 재미나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을 그들 또한 했다고 한다. 무슨 말이고 하니, 이날 만났던 이들 중 세 명을 현재도 만나고 있다. 강사와 수련생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 황금단추에서. 벌써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차담 시간엔 가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을 함께 떠올려보곤 한다. 여행을 떠나온 듯, 마치 꿈같았다며. 그럴 때 마다 봄이 오면 한강에 가서 요가를 하자고, 풀밭에 두 발을 디디고 서서 사각 사각을 느끼며 수련하면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그 모든 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곤 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봄은 왔지만, 예상치 못하게 모두의 일상이 흔들리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와의 싸움에 지치고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 하며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각자의 일상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끝나도 모양새만 다를 뿐, 이러한 시기는 언제든 우리 앞에 또 닥칠 테니까. 그러니 그간 내 앞에 자연스럽게 놓인 줄 알았던, 그래서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절대 무너지지 말자고 오늘의 나에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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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한 달 만에 돌아왔네요.

<얼렁뚱땅, 요가 강사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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