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9.22 #worship ##wooridle
1. 갈등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삶의 현실입니다.
오늘은 갈등에 대해서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갈등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죄가 많은 이 땅에서 살기 때문에 갈등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인간의 갈등의 문제를 성경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다윗과 압살롬, 초대교회, 바울 바나바 등 성경에서 여러 갈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갈등을 접근하는 관점을 복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적용 질문) 갈등이 올 때 놀라고 낙심 하십니끼?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 않나요?
2. 갈등은 우리의 우상을 드러내기에, 영적 성장의 기회입니다.
컵 속에 커피가 있는데, 이것을 들고 가다가 사람과 부딪쳐서 커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옷이 젖었는데, 그 이유는 부딪쳐서가 컵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때문입니다. 커피가 있었기 때문에 커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고, 갈등과 부딪칠 때 내 안에 있는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갈등 가운데 우리는 죄를 볼 수 있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갈등은 남이 아닌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밝혀주게 됩니다. 야고보서 3장 18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적용 질문) 여러분의 갈등 가운에 마음의 우상을 발견하십니까? 상대방의 결점이나 남의 우상들에게만 집중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내 우상을 발견했다면 회개로 이어졌습니까? 갈등 가운에 목표가 무엇입니까? 화평과 화목입니까?
3. 갈등 가운데 우리 내면의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갈등했습니다. 이 두 번째 선교를 앞두고 마가를 데려갈지 말지에 대해 갈등이 옵니다. 마가를 보는 바울과 바나바의 관점이 달랐기에 서로 부딪쳤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1~4)
나의 욕구와 감정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이어서 갈등과 싸움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나의 선택, 안전, 추억, 편리, 통제가 남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고, 이것의 뿌리에는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 안으로 굽어져 있기 때문에 나 중심적이고 이것이 죄입니다.
사람들의 삶의 선택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나를 위한 나의 삶, 타인을 위한 나의 삶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적용 질문) 갈등 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주로 공격형인가요? 회피형인가요? 자연적인 성향이 죄라는 것을 인정합니까? 교만을 인정하며 회개합니까? 나의 정욕을 채우려고 갈등한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4. 복음이 제시하는 갈등의 해설은 겸손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더욱더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6절)
어떤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까? 바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셨습니다.
복음 중심은 내 힘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되고, 겸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 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멘 (7~10절)
결국에는 그 갈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기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것인지, 축복 아니면 저주, 생명 아니면 죽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 있는가?입니다.
겸손이라 그래서, 무슨 소극적이거나 자신감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진정한 성경적인 겸손은 이런 말이 있어요. 겸손은 자신을 작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할 때, 나의 정욕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에게는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의 복음이 그 동기를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므로 우리의 정체성이 확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신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완벽함의 의로움을 우리에게 입혀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내세울 필요가 없어요. 그러기에 겸손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엄청난 채워짐이 있기에 당당하게 우리 자신을 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적용 질문) 갈등 안에서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여러분의 모든 필요한 것들이 채워졌다는 것을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