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빨랫줄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옥상에 널린 빨랫줄에 난닝구부터 체육복, 수건, 양말이 색색이 널려있는 풍경을 보면 그렇게 귀여웠다. 한참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을 시절이라, 빨랫줄을 만나면 수집하듯 찍어댔다. 그런데 언제부터 내가 빨랫줄을 안 찍었나 돌이켜보니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인 것 같다. 서울에는 높은 건물이 많아 옥상이 귀하고, 다세대 빌라에도 너무 많은 세대가 살다 보니 옥상을 독점하여 빨래 너는 공간으로 쓰기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살아보고서야 알았다. 얼마 전 윤성희 소설가의 인터뷰에서 어떤 대목을 읽었는데, 걷다가 종종 따뜻한 햇살이 얼굴로 쏟아질 때면 그 대목을 생각한다. 최근에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소설가는 이렇게 답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열리는 장에서 등심 돈가스 두 장을 사서 맥주와 함께 먹을 생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이었다. 멀리서 ‘배가 아파요, 배가 아파요’ 하면서 아이와 엄마가 달려오더니 벚꽃 잎을 흩날리며 종종 달려갔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 좋아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로 너무 예뻤다. 무엇이 예뻤냐면, 우선은 아파트 장에서 등심 돈가스를 사서 맥주와 함께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소설가의 하루가 예쁘게 느껴졌다. 날은 봄이고 벚꽃 잎이 도보에 흩어져 쌓여있고 그 속을 가르며 달리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니 못 견디게 예뻤다. 따뜻한 먼지냄새, 희미한 벚꽃냄새가 떠올랐다. 15년 전에 2년 정도 살았던 시골 동네가 있었다. 00읍 00리가 주소였던 그곳은 동사무소 대신 읍사무소가 있는 시골이었다. 그렇다고 구불구불한 흙길에 기와집이 즐비한 그런 시골은 아니고 내가 사는 곳은 그래도 시내였다. 농협도 있고 롯데리아도 있는. 어느 날 오전 6시인가 7시인가 하는 시간에 창밖에서 호른 비슷한 소리가 들려서 창문을 열어보니 글쎄, 소가 걸어가고 있었다. 주인도 없이 혼자 산책하는 소를 창문 밖으로 본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아니, 이게 지금, 소가 혼자 내 방 앞을 걸어가고 있는 거야? 하고 소리를 내어 말했다. 알고 보니 그 소의 주인은 나이가 아주 많으신 할아버지인데 자주 소를 잃어버린다고 한다. 이웃들이 그걸 알아채고는 혼자 돌아다니는 소를 보면 할아버지댁에 데려다 준다는 것이다. 모든 게 너무 귀엽고 예뻤다. 산책하는 소 라니. 산책하는 고양이도 신기한데, 산책하는 소 라니.
예쁜 것을 보는 눈이 귀하다고 생각한 적이 최근에 또 있었다. 먼 바닷가에 사는 한 음악가는 취미가 낚시인 아이를 가르친다고 했다. 걸어 다니는 물고기 도감인 그 아이가 부럽다고 했다. 천 년 혹은 이천 년 동안 같은 풍경이었을 텅 빈 해변과 까마귀를 보러 자주 나간다고 했다. 오래 묵은 그 쓸쓸함이 좋다고. 예쁜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또 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나무를 좋아해서 나무줄기가 돌돌 감긴 모양의 은반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반지 안쪽 면에 희망이라는 글자를 손글자로 새겨 넣었다. 나는 그 반지를 보고 반지 안쪽면에 왜 희망이라는 글자를 새겼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내가 죽어도 이 반지는 남을 텐데, 내 유품을 정리하게 되는 누군가가 이 반지를 보고 안쪽면에 있는 글자를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희망은 그렇게 ‘발견’되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정말 예쁘다. 못 견디게 예쁘다. 얼마 전 고성에 여행을 갔는데, 날씨가 좋아 동네를 오래 산책했다. 말 그대로 밤톨이 같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앞에서 내 손바닥만 한 게임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게임기는 한 대뿐이고 아이들은 네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한 판씩 즐기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보는 게 정말 좋았다. 누구 하나 내가 먼저 할래, 하고 말하지 않는 아이들의 인내심이 예뻤다. 못 견디게 예뻤다.
살면서 점점 예쁜 눈을 잃어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바로 예쁜 것을 알아차릴 때다. 예쁜 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설렌다. 자꾸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러면서 그가 발견한 예쁜 장면들을 나도 본 것 마냥 떠올리고 싶다. 주인과 산책을 나온 강아지를 보고 속으로 인사를 건네고, 낙엽을 줍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웃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모르는 할머니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 하루. 그런 하루를 모으고 싶다. 예쁜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