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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린 Jan 12. 2022

해외에서 일합니다 - 단, 쪽팔림을 곁들인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사람의 부끄러운 일기

 '3초', 방송에선 3초만 마가 떠도(정적) 방송사고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건 내가 진행 중인 프로그램에서 방송사고를 넘어 마지막 방송을 예고하는 상황인 건가.


입사에 들뜬 지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반갑습니다.' 대신 '모르겠습니다.'가 입 안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

내가 입사할 때쯤 저장해둔 '입사 짤'


나는 지금 싱가포르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장장 1시간 40여분 간의 수많은 피피티 화면들을 보며 버티고 버텨, 드디어 내 발표 차례가 되어 한 달 간의 성과를 공유할 시간이 됐다. 


'소셜 채널은 이만큼 성장했고 앞으로도 수치는 증가할 것...' 복잡한 차트와 함께 패기 있게 이야기를 끝맺었다. '질문 있나요?' 대신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로 말을 마무리해 제발 어떠한 질문도 나오지 않기를 강렬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빌었다.(사실 이것부터 문제였다.)


하지만 역시나 인생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고 해당 미팅의 최고 책임자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수치에 대한 특정 타깃이 있나요?"


나는 속으로 '오, 타깃? 알지! 마케팅 용어로 타깃 하면 소비자, 소비자 하면 타깃이지.'라고 생각하며 "주로 20~30대이긴 하지만 팔로워들이 매우 다양해서..."라고 말하는 순간 그가 말을 끊었다. "아니 내 말은 지금 이 발표에서 증가율이 몇 퍼센트라고 계속 말하는데~ 그게 네가 예상한 수치인지, 원래 '타깃(목표)'은 뭐였는지를 묻는 거야."


 '엄........ Ummmmmm...'


3초 이상의 정적과 함께 '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른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마치 영어 듣기 시험에서 음성은 이미 지나갔는데, 답은 못 고른 찝찝한 마음이랄까. 아니다. 그것보다 축구 게임을 내내 하다가 질 줄 예상했는데 정말로 '넌 졌다!'라고 누가 옆에서 소리쳐서 마음이 납작해진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도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잘 알고 있는 매니저가 나 대신 아주 클리어하고 디테일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상황은 종료됐다. (당신은 엔젤...) 명백히 내가 잘 모르는 문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단어에 대한 해석이 안 돼서 누군가는 나서 주길 바란 것도 사실이다.


오늘도 이 나이에 실수를 통해 또 뭔가를 배웠다. 


일을 하며 생기는 자잘한 실수는 진짜, 진짜, 정말로 하기 싫지만 그건 불가능의 영역인 듯싶다. 대신 '모른다'라고 말하지 않게 위해 미리 알 것. 그리고 모르면 모른다고 답할 것. 아니 그 대신 확인해보고 다시 알려주겠다고 할 것을 배웠다. 


해외에서 일하며 뭔가를 놓치고 실수한다는 건 더욱 힘든 일인 것 같다. 회의에 참석한 20명 모두가 아는 그 단어를 나만 모르고 있을까 봐, 혹은 내가 실수해서 한국인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심게 될까 봐.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소한 이유들로 소외될까 봐.


'그러니 더욱 나대야지. 모르는 건 알아보고 물어보고 메모해두며 내 입지를 나름대로 넓혀봐야지.' 라며 다짐해보는 1월의 첫 이야기.


아직은 한참 갈 길이 먼 싱가포르 외노자의 일기.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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