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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린 Dec 16. 2019

맵고 짜고 단 대한민국

이젠 담백한 뉴스가 필요해

 '기왕이면 맵고 짜고 단거~' 다이나믹 듀오의 새 앨범이 지난 11일 발매됐다. 다듀의 엄청난 팬도, 앨범을 기다려온 것도 아니지만 남편 덕에 이 노래를 알게 됐다. 다듀의 엄청난 팬인 남편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근데 진짜 한국은 맵고 짜고 달고, 엄청 자극적이지 않아?"라고 말한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 보니 한국 뉴스를 그렇게 자주 보진 못하지만 볼 때마다 엄청 잔인하거나 엄청 슬프거나 엄청 웃긴 건 사실이다. 주로 사람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기사들과 뉴스들로 모바일 화면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들은 언론사 웹페이지의 조회수를 높이려면 어쩔 수 없이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야 하고 또 그런 제목을 달려면 그런 이슈들을 자연스레 팔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두 달간 모 연예 언론사 인턴기자를 한 적 있는데, 예쁘고 어린 아이돌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파고 또 파면서 '걸그룹 OO, 하와이서 비키니 화보...S라인 아찔' 같은 말도 안 되는 타이틀로(사실 더 자극적이었지만) 네티즌의 '어그로'를 끌었었다. 물론 그런 연예인의 소식이나 화려한 모습으로 대중의 호기심을 채우는 것도 언론인의 역할이지만 동시에 내가 어떤 기사를 쓰는지 친구와 가족에게 그다지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후로 경제신문과 다른 방송사 기자를 거치면서 연예부 기자가 되겠단 열망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안전 최강국인 싱가포르라고 쇼킹한 뉴스가 없을까. 그렇지도 않다. 몇 달 전, 싱가포르 법원에서 재판을 방청할 기회가 생겼었다. 방청할 수 있는 재판 리스트 중 가장 주제가 무겁고 심각한 것을 골라 갔는데 '한국과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덜 잔인한 수준이었다. 사귀던 커플 중 피고인 남자친구 측이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섹슈얼한 장면 다수 포함)'를 보고 여자친구를 감금하고 이상한 동작들을 강제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날 자리에선 증거물로 수갑과 이상한 끈들이 제출됐고 피고인은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했었다. 같이 본 친구들은 너무 충격적이라는 듯이 식겁을 했지만 그 며칠간 내가 본 한국 뉴스들에 비하면 엄청 충격 먹을 정돈 아니었다. 당장에도 한국은 조두순 출소 소식부터 유명 연예인 강간 의혹, 악플로 인한 스타의 자살 등 믿고 싶지 않은 온갖 뉴스들이 범람하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온 어학원 친구가 하루는 내게 싱가포르 신문기사 한쪽을 보여줬다. 설리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날은 엘리베이터를 타든 어떤 영어수업을 듣든 웬만한 외국 친구들은 다 그 소식에 대해 첫인사를 꺼냈다. 나도 엄청 놀랐었지만 외국인 친구들에게도 가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나 보다. 나는 친구들에게 "나도 엄청 충격적이야. 근데 처음 있는 일은 아니야. 악플 때문에 자살한 한국 스타들이 몇몇 더 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구하라가 자살했다. 그날도 몇몇 친구들은 나한테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여주면서 너무 안타깝다는 말을 했다.


 언론을 돌아가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맵고 짜고 단 뉴스인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단 맛이 더 나는, 아니면 차라리 담백한 맛의 뉴스를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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