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레 May 18. 2016

마음만 전하기가 더 어렵다

스승의 날 선생님께 편지 전하기 한번 어렵네

 고마운 사람한테 보답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으려 한다. 지난해에 가장 많이 감사를 표한 사람은 첫째 아이 기관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이에게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란 존재가 긍정적으로 자리 잡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그 자리를 차고 넘치게 메워주었다. 그래서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아이를 유달리 신경 써서 잘 봐달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다. 그간 잘 보살펴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소소한 선물과 편지를 종종 전했다. 예의상으로라도 빈말을 잘 못하는데, 일지를 기록하는 노트에 매일 고맙다고도 썼다. 100% 진심이었다.


 올해 새로운 기관에서도 굉장히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그런 건 아이가 먼저 알아본다. 유치원 가는 걸 즐거워하고, 선생님이 예쁘고 좋다고 말한다. 사실 그걸로도 충분한데, 몇 달 지내는 동안 단 한차례의 어긋남도 없이 명쾌하게 소통이 진행된 것도 신뢰에 큰 몫을 더했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반나절의 시간을 어떤 사람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함을 넘어선 일말의 불안감을 덜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역시나 그 마음을 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기관에서 공문이 왔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픈 학부모들의 마음은 고맙지만, 어떠한 선물도 일절 받지 않으며 따뜻한 말 한마디, 손편지 한 장이면 충분하다는 내용이었다. 애초에 이 기관을 선택한 이유는 과장 없이 실속 있는 프로그램과 명료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내가 추구하는 바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기관의 정확한 입장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매일 진심으로 하고 있는데, 그 이상의 고마움을 표할 길이 달리 없다는 게 아쉬웠다.




사건 전날

 문구점에서 담임 선생님과 부담임 선생님께 쓸 카드를 두 장 골라 샀다. 일과가 마무리되면 아이와 함께 앉아서 내가 글을 쓰고 아이가 그림을 그리게 할 요량으로 식탁 위에 얹어두었다.


 잠시 할 일을 하고 부엌으로 들어서는데 식탁 위에 펼쳐진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빈 공간 하나 없이 하트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크레파스로 그려서 여기저기 번져 묻어있고. 봉투에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강아지 스티커가 빽빽이 붙어있었다.


 아이는 다가와 자랑스럽게 자기가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아끼는 강아지 스티커는 어찌 이리 많이 붙였나 물었더니 선생님이 좋으니까 괜찮다고 했다. 아이의 정성이고 마음이니 그대로 보내기로 했다.


 내가 쓴 편지를 추가하고, 아이가 구분해 준대로 봉투 겉장에 선생님의 성함을 써넣었다. 가방에 넣으면서 내일 선생님께 잘 전달해 드리라고 했다.




사건 당일 오전

 아침에 집을 나서며 아이는 가방을 열어 들여다보고는 "편지 있지? 있네."했다. 


 등원시킨 후에 집 정리를 하려는데 아이 책상 위에 편지 봉투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왜 이걸 가방에서 뺐지? 왜 가방을 들여다봤을 땐 있다고 그러고 간 거지? 어쩔 수 없이 내일 전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축제도 전야제나 당일에 신나지, 지나고 나면 거품이 빠지고 시들해지는 느낌이다. 별거 아닌 편지 한 장이지만, 또 별거 아닌 편지 한 장인 지라 다음날엔 전하기엔 그 마음이 식어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표할 수 있는 성의는 이 따끈한 마음을 오늘 꼭 전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원래 셔틀버스를 타고 하원을 하지만, 기관으로 직접 데리러 가겠다고 전화를 했다.




사건 당일 오후

 편지를 챙겨 집을 나섰다. 아이를 만나 "편지 두고 갔잖아. 얼른 선생님 갖다 드리고 와."했다. 아이는 급히 다시 원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부담임 선생님을 못 만나서 담임 선생님께 둘 다 드리고 왔단다. 어떤 게 선생님 것인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걱정하길래, 내가 이름을 써두었으니 바뀔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오전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왜 가방에서 편지를 꺼낸 거야?"했더니 아이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스티커를 너무 많이 붙인 거 같아서 좀 떼려고.

 

 


 덕분에 며칠을 생각날 때마다 눈물나게 웃었다.

 

 언젠가 아빠가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나한테 아까운걸 줘야 진짜라고. 없어도 괜찮을만큼 하찮은거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겠느냐며.


 뒤늦게 아깝다는 생각에 두 개쯤 떼어내긴 했지만, 그래도 아끼는 스티커를 몽땅 썼으니 선생님께서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시려나.

작가의 이전글 육아 같은 계절,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