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레 May 22. 2016

엄마가 포기하지 않는 한, 아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네가 그만두기 전까지 나도 포기하지 않을게

 요즘 여자아이들이 발레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교육 트렌드 때문은 아니다. 딸에게는 발레를 시켜야겠다는 로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바가 있어 육아의 근간을 독서와 운동으로 삼았다. 밥 먹고 잠을 자는 필수적인 행위 마냥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책을 가까이하고 운동을 당연시하길 바란다. 내가 그리 자란 것처럼. 적당한 시기가 되면  운동 종목을 선정하여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세가 된 아이가 어느 날 우연히 발레 영상을 접한 후 "엄마, 나도 발레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단지 공주님 같아 보이는 핑크색 튜튜가 입고 싶은 건 아닌가 했지만. 알아본 바로는 발레 학원은 6세 이상부터 등록이 가능하다고 했다. 문화센터의 유아 발레 강의도 강사의 지시에 따라 동작을 하려면 적어도 만 3세가 지나야 할 거라고 했다. 한번 시작하면 어지간해서는 그만두게 하고 싶지 않아서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아이는 불쑥불쑥 언제부터 발레 수업을 갈 수 있는 거냐며 묻곤 했다. 몇 달이 지나면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가끔 유아 발레 동영상을 보여주며 세 번째 생일이 지나면 배우러 가자고 했다. 세 돌을 앞두고 이젠 때가 된 거 같다고 생각한 시점에, 수업을 신청하고 발레복을 구입했다.


 그 순간부터 손꼽아 기다린 아이만큼이나 나도 설레기 시작했다. 이건 때가 되어 기관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네가 언제 이리 컸니.'하는 뿌듯함과는 좀 달랐다. 물건이 갖고 싶다던지, 음식이 먹고 싶다던지, 어디 가고 싶다던지 하는 단발성의 욕구가 아닌, 장기간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행위를 아이가 처음으로 원했다. 그걸 부모로서 지원해주며 "이제 시작이구나. 우리 함께 잘 달려보자."한 거다. 아이의 인생 레이스에 페이스 메이커가 된듯한 그 묘한 기분은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대망의 첫 수업, 시작부터 고비

 아이도 나도 들떠있었다. 발레복으로 갈아입으며 신나 하던 아이는 수업이 시작하자, 내 무릎 위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낯가림이 있어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가 그럴 거라고 예상도 했다. 분명 금세 적응하고 누구보다 잘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슬금슬금 화가 났다. 


 그다음 수업 때에도 아이는 내 무릎 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참다못해 결국 아이에게 감정을 고스란히 쏟아내고 말았다. "네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 하고 싶다고 오랫동안 기다렸잖아. 이 더운 날 동생하고 엄마는 널 위해 이 자리에 와있는데, 뭐하고 있는 거야? 하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오지 않아도 좋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아이를 내가 못 견디겠어서 포기를 권했다. 아이는 강하게 거부했다.


 세 번째 수업을 앞두고 나는 발가락이 골절되어 깁스를 했다. 하필이면 폭우도 쏟아졌다. 그래도 아이는 수업에 가길 원했다. 갔다. 아이는 혼자 발레복을 갈아입더니 말했다. "엄마는 아프니까 여기 앉아있어요." 그러고는 한가운데로 달려 나가 수업을 받았다. 다들 엄마와 손잡고 같이 동작을 하는데 내 아이만 혼자서, 그것도 제일 못하는 게 아주 열심히, 중간중간 "엄마, 나 잘하지요?", "엄마, 나 좀 보세요!"라고 민망하게 큰 소리도 질러가면서. 그 날 아이는 원장, 강사, 다른 부모들에게까지도 엄청나게 칭찬을 받았고, 이후 자신감이 붙어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타고나길 유연하질 않아서


 몇 달을 지켜보니 발레라는 게 유아 클래스라 해도 정해진 티칭 커리큘럼 안에서 거의 비슷한 동작을 반복한다. 문외한인 내 생각에도 자기 몸을 인지해가며 인내심을 가지고 동작을 완성해가는 건 6세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학원에서 괜히 6세부터 받는 게 아니었다.


 발레, 혹은 발레복의 로망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생각과는 달리 지루하고 힘들다 느끼는 아이들-어쩌면 엄마들-은 계속 중도에 하차하였다. 아이가 어리다 보니 완성되는 동작이 거의 없었다. 또 눈에 띄게 유연성도 떨어져서 근육 늘리는 동작을 유난히 싫어했다. 그만두고 싶다고 할 날이 곧 올 거 같아 마음의 준비를 했다.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하고 싶지 않으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돼."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런데 이미 수업을 통해 칭찬을 받고 자신감을 얻은 아이는 발레 자체보다도 발레 수업에 굉장한 애착을 보였다. 좋아하지 않는 동작도 열심히 따라 해 보이며 칭찬을 바랐다. 여전히 유연성은 떨어지는 편이지만, 갈수록 동작이 완성되어 가고 균형 감각이 좋아지는 게 눈에 보인다.


 지금은 흥미를 가지고 접해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예상치 못했던 가장 큰 수확은 아이가 노력으로 인한 작은 성공의 기쁨을 처음으로 맛보았다는 것이다.

 

 


낮잠보다 발레


 이 또래가 등록할만한 문화센터의 수업들은 대체로 늦은 오후에 개설되어 있다. 작년까지는 점심식사를 하고 낮잠을 잔 다음에 수업에 참여하였다. 그때가 딱 좋았다.


 올해 유치원을 다니며 제시간에 낮잠을 자지 못하게 된 아이는 3월 한 달간 피곤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하원 후에 기절하듯이 잠들었다가도 발레 가야 된다며 벌떡 일어난 일도 여러 번이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잠들어서는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낮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을 때까지 잠시만 쉬는 게 어떨까, 아니면 그만두었다가 내년에 학원으로 가는 건 어떨까 여러 번 권했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여 차마 꺾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에게 '낮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은 때'가 왔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들어가서 모유 수유하는 방법을 배울 때 처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포기하지 않으면 아이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요." 

 

 수유량과 텀이 맞추어질 때까지는 어렵지만, 그다음부터는 수월하다. 그렇게 되기까지 힘들다고 포기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엄마라는 요지였다.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아이는 힘들다고 할지언정 하기 싫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여전히 하고자 하는 일을 내 기준에서 세 번이나 포기를 종용했다.


 '내 아가, 미안해. 이제 내가 먼저 그만두자 하지 않을게.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앞에 놓인 걸림돌들을 차근차근 극복해가는 네가 엄마는 너무 자랑스럽단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만 전하기가 더 어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