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레 May 29. 2016

갈 길이 머니 일희일비하지 말자

5살의 이(4-2)춘기

"나도 다 안다고요. 그만 좀 말해요!"


 갑자기 5살 된 딸이 몇 주전부터 마치 15살 소녀같이 군다. "나도 다 안다고요. 그만 좀 말해요!", "엄마 나 할 일이 있으니까 저리 좀 가있어요." 이런 말은 예사고, 실컷 하고 싶다는 일 하면서 기분 좋게 놀다가 난데없이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이가 사춘기나 되어야 겪을 일 같았는데, 벌써 이러면 어쩌지. 그간 중2 덕분에 북한이 쳐들어 오지 못한다, 사춘기를 이기는 게 갱년기라는 우스개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아이가 커가는 동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그 전에 관계를 견고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채로 직면한 현실에선 진심으로 마음이 상한다.


 정말 다 알아? 그럼 너 혼자서 다 할 수 있어? 진짜 15살이라면 '그래. 네가 내 품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는구나. 나도 널 천천히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겠다.'라며 홀로 여행을 떠나 마음을 달래고 올 심산이다. 하지만 5살이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해도, 5분에 한번 꼴로 엄마를 찾고 도움을 청한다. 아직 알아야 할 것도 익혀야 할 것도 많은데 벌써부터 가르침은 거부한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거지?




잘되면 내 덕, 잘못되면 내 탓?


 첫째 아이를 낳고 한동안은 스스로 아이를 정말 잘 키운다고 생각했다. 계획한 대로 임신을 했고, 임신 기간 동안에는 요가를 하며 즐겁게 지냈다. 큰 고통 없이 순산을 하고 모유수유를 했으며 체력을 금방 회복했다. 미리 짜 놓은 일정대로 수유 텀을 늘리거나 이유식을 했고, 같은 시간에 수면 의식을 하며 숙면을 취하도록 유도했다. 매일 동네를 산책하고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자랐다. 2살 터울의 둘째 아이를 계획했던 것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유행처럼 번지는 '내 아이 잘 키운 엄마의 육아서'쯤은 충분히 쓸 수 있겠다고 자만했다.


 내 육아 방법이 옳다고 생각했던 건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첫째 아이와 식성이 달라 그간 해온 대로 음식을 주면 잘 먹지 않았고, 자기 전에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찾으며 한 시간쯤 자지러지게 울어대기도 했다. 밖에서 소리를 지르고 드러눕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아이들을 보고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둘째 아이가 딱 그랬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누가 그러는 걸 본 적도 없는데 어쩜 저럴 수가 있지. 타고난 성질이 그런 거였다.  


 그럼과 동시에 첫째 아이가 무던하게 자란 것도 내가 잘 키워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노력하고 애쓰기도 했지만, 아이가 타고나길 유순해서 잘 먹고 잘 자니 수월한 거였고, 남편이 일찍 퇴근해서 아이와 함께 보내준 시간들이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운동을 꾸준히 시킨 탓에 얻은 체력으로 지금까지 버텼던 거다. 내가 잘났던 게 아니라 모든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던게다. 무엇 하나 쉽게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 널 이해해


 태어나 배고프고 졸릴 때만 울던 아기가 3개월쯤 지나니 뒤집기를 하면서 2주 정도 엄청나게 짜증을 냈다. 뒤집고 싶은데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뒤집고 나서도 힘이 드니까 소리를 지르곤 했다. 뒤집는 게 잘 되지 않는다고 소리 지르는 아이를 도와주거나 안아 올리지 않았다. 스스로 터득해서 이 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머리의 충격이 덜하도록 매트를 깔고, 주변에 부딪히는 물건들이 없게 치워두었다. 뒤집기를 성공했을 때에는 칭찬을 해주고,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도록 헝겊책 등을 보여주었다. 점차 방법을 터득하고 근력이 생기면서 뒤집기가 능숙해지니 더 이상 짜증을 내지 않았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이 감정 조절을 잘 못 하고 충동적인 이유는 심신이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어른처럼 다 큰 것 같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살아나갈 수 있을 만큼 성숙하고 독립적인 상태도 아니다. 그 괴리감을 메우는 기간 동안은 머릿속에 화산이 폭발한 것 같겠지.


 사실 나 역시 엄마가 되고 나서 새로 맡게 된 중차대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싶으면서도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느낀다. 매일을 자아와 가치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러니 사춘기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아마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계속 변화하면서 고뇌하지 않을까. 내 아이도 지금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어가며 그런 연장선상에 서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아닌 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명확히 표현할 수 있기까지는 분명 아이의 몫인 거다. 대신해줄 수는 없지만 곁에서 지원할 수 있는걸 해주고,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정도일 거다. 옳은 판단을 위해 가이드를 하는 것도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하는 건지 매 순간 난제다. 자칫하면 잔소리를 무한 반복하는 엄마와 귀 막고 한숨 쉬는 아이의 관계만 남게 될 것 같다.   




아직 갈길이 머니 일희일비하지 말자


 아이의 언행에 상처를 받고 며칠 기분이 가라앉아있었다. 주말을 맞아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남편이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운을 띄웠다. 아이는 엉엉 울면서 엄마 왜 기분이 좋지 않냐고 물었다. 진심으로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에 슬퍼했고,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아이고, 이럴 때 보면 천상 어린 아기다.


 아이를 꼭 안고 말했다. "아가, 징징대지 말고 너의 감정을 말로 표현해봐." 알았단다. 한마디 더 덧붙였다. "공부 열심히 해서 꼭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로 가." 무슨 뜻인 줄도 모르면서 해맑게 알았다고 대답한다.


 고집불통에 마이동풍인 딸내미를 30년 가까이 길러온 엄마, 아빠는 그 인고의 세월을 어찌 견디셨을까. 나는 아직 갈 길이 한참이나 멀었다. 이런 일쯤이야 앞으로 겪을 걸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포기하지 않는 한, 아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