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만하니까 살이 찐 거다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통통해진 얼굴에, 선명한 목주름,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인생 최대 몸무게를 사진에서 적나라하게 본 후부터다. 1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려 몸무게는 10kg이나 늘었고, 원래도 존재감 뚜렷했던 목주름은 아예 내 목에 평생 각인된 것처럼 선명하고 깊어졌다. 턱살, 볼살에 당당했던 미소도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나 왜 이렇게 됐을까.
짐작컨대, 변화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겪으면서부터 시작됐다. 나는 서른아홉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재촉하던 일가친지들의 오지랖 넓은 성화에 “마흔 전에는 가겠죠”라며 방어막을 치던 아빠의 말이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남들은 (특히 어른들은) 늦었다고 난리였던 결혼이었지만, 나는 아주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들 두루 누리면서 나름 알차게 보내고 결혼이라는 인생 2라운드를 맞았기에, 나는 만족했다. 남편과 나는 혈기왕성한 때를 지나 적당히 무르익은 나이에 만나 가정을 이뤄서 그런 건지 삐지고, 다투고 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저녁이면 손잡고 동네를 산책하고, 심야영화를 보고, 주말이면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등 안정적이고 평안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결혼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첫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붉은색 두 줄. 드라마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어 들었던 임신 테스터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발견했다. 임신이었다.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기에 당황스럽고 약간 멍해졌었다. 그때부터 산부인과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니 생명이, 아니 아직은 모르는 그 무언가가 주수에 맞게 잘 자라는지 확인하는 것은 중요했기에 주기적으로 산부인과에 갔다.
“아기집은 보이는데 아기가 안 보이네요”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아기가 있으니까 아기집이 생긴 거 아닌가, 살 사람도 없는데 나는 빈집을 지은 건가, 당연히 있어야 할 아이가 왜 없지.. 의사는 며칠 후 다시 살펴보자고 했다. 그렇게 처음 겪는 임신에, 처음 듣는 말에 조금은 멍한 채로 일상을 이어갔다. 며칠 후 나는 의사에게 ‘계류유산’이라는 말을 들었다.
계류유산
임신은 되었으나, 발달 과정의 이상으로 아기집만 있고 태아가 보이지 않거나
사망한 태아가 자궁에 잔류하는 상태
결국 나는 ‘소파수술’이라고 부르는 수술을 했다. 눈을 떴을 때는 회복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가 금방 끝날 거라는 의사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기억이 없다. 흐릿하고 몽롱했던 시선과 정신이 천천히 돌아왔고 회복 후 남편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왔다. 1월, 모든 것이 시작되던 새로운 시기였다. 새로운 한 해를 맞아 누군가는 설레었을 그 시기에 나는 처음으로 이별을 했다.
유산은 내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한 번으로 충분할 줄 알았다. 그해 가을 나는 또 한 번 임신을 했고 유산을 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봄에 다시 한번 이별을 했다. ‘심장이 뛰지 않아요, 아기가 보이지 않아요’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의사 앞에서 울컥울컥 눈물이 쏟아졌고, 진료실을 나와 남편을 붙잡고 펑펑 울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되다가도, 다시 그 순간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가는 지금 또 눈물이 쏟아진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별이었고, 슬픔이었다.
잘 먹고 잘 쉬라는 여러 사람들에 말에 나는 정말 그때마다 잘 먹고 잘 쉬었다. 두 세 달씩 한약을 먹고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찾아다니며 먹었다. 우선은, 일단은 나를 추스르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세 번째 이별을 한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았을 때 나는 알았다.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미 통통해질 대로 통통해진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평생 살이 안 찔 줄 알았더니 언제 이렇게 살이 쪘냐, 결혼하더니 늙었다... 그때마다 웃고 넘겼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면 정말 다른 내가 보였다. 그리고 체중계가 아주 정직하게 달라진 나를 말해줬다.
짐작컨대 내가 살찐 건 유산 후 먹은 한약과 보양식 때문이고, 또 짐작컨대 급성장한 주름과 갑자기 찾아온 노안은 세 번의 유산 때문이다. 이렇게 못 박아 말하면서 나는 나를 위로한다. 그 일을 겪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예전 그대로의 나였을 거라고.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상처가 남는데, 심지어 그런 큰 아픔을 겪었는데 흔적 하나 안 남겠냐고. 나는 그저 상처 때문에 살이 쪘고, 주름이 깊어졌을 뿐이라고. 옷이 맞지 않아 아침마다 몇 벌씩 바꿔 입을 때도, 밖에 나가서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심심찮게 들을 때도 나는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그럴만하니까 살이 찐 거다. 나한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