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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바람 Oct 18. 2022

어떤 역할

오늘의 마음 (5)

사람을 만나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일을 하면서는 매일매일 내가 원하지 않아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로 인해 지치기도 했고, 지치게 하는 이들 덕인지 마음 맞는 가까운 이들과는 더욱 돈독해지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가까운 친구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까지 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다가 육아에 세계에 들어선 나는 ‘관계 단절’에 가까운 일상을 보냈고, 보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인간관계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고, 연락이 오는 걸 그리 달가워하는 편도 아니다. 일의 처음과 끝이 연락으로 연결되다 보니 다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연락을 주고받는 그 작은 일에도 적잖은 에너지가 소모되니 어느 순간부터 버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육아를 하고부터,  집에만 있고부터는 연락이 오는 일이 드물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고, 상대에게서 연락이 오는 일도 드물었다. 그렇다고 아예 사람을 안 만나고 지내는 건 아니지만, 뭔지 모를 허전함 또는 쓸쓸함 또는 외로움 같은 것들이 훅-하고 다가올 때가 있다.      


SNS 속 친구들은 여전히 바쁘고 즐겁고 새로운 공간과 사람들을 마주하며 지내는데, 그 속에 나는 없는 것 같은 헛헛한 마음. 나와 같이 바쁘게 즐겁게 지내던 친구들이었는데 그 일상에 나는 없는 것 같은 서운한 마음.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상한 마음까지... 특히 가장 가까웠던 친구에게 느끼는 혼자만의 서운함은 자주 불쑥 튀어나왔고, 안부 문자 한 번 없는 친구가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이런 마음과 달리 그 친구는 열심히 일을 하고, 가까운 친구들과 맛집을 가고, 여행을 가고, 그들의 집을 방문하는 등의 일상을 SNS에 공유하곤 했다. 이제 그 친구는 나와 다른 도시에 살기에 자주 볼 수 없는 건 당연하다지만, 못난이 같은 서운한 마음이 자꾸만 튀어나왔다. 한두 번씩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해도 뭔가 예전 같지 않은 느낌에 전화 거는 일도 망설여지곤 했다.     


그 친구와는 직장에서 만나 10여 년 동안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별 약속이 없으면 퇴근 후에 늘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사이였다. 여행도 함께 다녔고, 좋아하는 영화도 자주 함께 봤고, 취향을 나누고 마음을 들여다보던 가깝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함께 지낸 10여 년 간의 일상에서 그 친구가 없던 순간은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 그 친구가 다른 도시로 떠나고, 나는 결혼을 하고 삶의 여정이 달라지니 그토록 가깝던 사이가 천천히 멀어졌다. 그 친구 옆에는 나보다 더 오래 함께한 고향 친구, 대학 친구들이 같은 도시에서 따뜻하고 다정하게 곁을 지키고 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나의 어느 한 시절 나에게 필요한 ‘어떤 역할’을 충분히 다 해냈고 이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간 것뿐이라고. 그러니 멀어졌네, 뜸해졌네 하는 서운한 마음 같은 건 가질 이유가 없다고. 그토록 서운하던 마음이 말끔히 씻겨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그 친구는 그 시절에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매일 얼굴을 보고, 자주 많은 걸 함께하던 시절에서 이제 우린 가끔씩 오래 보는 시절로 들어선 건지도 모른다. 가끔씩 봐도 그 친구는 여전히 다정하고 살갑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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