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음 (13)
지난 일들이 문득 한 장의 사진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찰칵-하고 찍어둔 어느 날의 사진처럼 가만히 멈춘 이미지로 나타날 때가 있다. 점심을 먹고 차를 타고 오던 길에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비가 내리지 않는 화창한 날이었고, 거리는 한산했고, 종종 들르던 사진관 앞 골목길이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계절이나 정확한 시기는 모호했지만, 분명한 건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오후, 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고 그날 나는 사진관에 들러서 아마도 필름을 맡겼거나, 인화된 사진을 찾으러 갔을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늘 야간자율학습이 있었으니 캄캄한 밤이 돼야 집으로 향했고, 날 밝을 때 집에 갔던 날은 토요일 밖에는 없었다. 그때만 해도 주 5일이 아니었으니 나는 토요일에도 열심히 학교엘 갔고, 오후자율학습을 해도 해가 환할 때 집에 갈 수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정확히는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는 이런저런 상점들이 많았다. 내가 종종 들렀던 곳들은 뻔했다. 사진관, 비디오대여점, 서점, 음반가게, 팬시점이 전부였다. 사진을 잘 찍지는 못 했지만 카메라를 손에 쥐고 나름대로 구도를 잡고 초점을 맞춰서 찰칵-하고 사진을 찍는 순간이 좋았다. 그리고 필름을 맡기고 사진이 인화될 며칠을 기다리는 게 즐거웠다. 빛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빛이 너무 과하거나 해서 엉망이 된 사진도 있었고, 누구는 눈을 감고, 누구는 딴 곳을 보느라 제멋대로인 사진도 있었고, 언제 찍혔는지 모를 모호한 풍경의 사진도 있었던 예측 불가했던 인화된 사진을 보는 게 재밌었다.
24장, 36장짜리 동그란 필름을 사서 몇 장 남았는지 확인해 가며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찍었던 때였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서 친구 얼굴도 찍고 파도치는 바다도 찍고 꽃도 찍고 그래도 필름이 남으면 집에 가져와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찍곤 했다. 그렇게 종종 들르던 사진관이 지금도 남아 있으려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작은 사진관이었는데, 작은 계단을 딛고 올라가서 유리로 된 문을 열면 인상 좋은 아저씨가 자리를 지키던 길가의 작은 사진관. 고등학교 시절 내가 찍은 사진은 전부 그 사진관에서 인화했는데, 조금씩 나아지던 내 사진실력을 어쩌면 아저씨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화장대 위에 일회용 필름카메라가 있다. 그냥 문득 갖고 싶어서 샀고, 열몇 장 정도 찍고는 내내 화장대 위에 있다. 1년도 더 지난 것 같은데, 인화는 되려나. 필름을 인화해 주는 사진관이 근처에 있기는 한 걸까. 끝까지 다 찍고 인화는 할 수 있을까. 오늘도 이렇게 생각만 하다가 필름카메라는 화장대 위를 내내 지키고만 있다.
문득 생각난 그 골목길에 다시 가보고 싶다. 어느 화창한 오후에 다시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 한 장의 사진처럼 남은 그 시절이 오늘은 너무 그립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했던 그 토요일 오후가, 사진관이, 어린 내가, 그 골목이, 그 마음이 무척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