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연희동의 글월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성수동의 디올성수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부암동의 어느 조용한 찻집을 좋아하는지 말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단편적일지라도 당신이 좋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측할 수 있다.
미식가의 원조라는 사바랭 선생님은 먼 옛날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수많은 브랜드가 뜨고 지고, 엣지를 강하게 내세우는 수많은 스몰 브랜드가 주목받는 이 시대 대한민국에 사 선생님이 사셨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는 않으셨을까. '당신이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는 브랜드들을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내가 어떤 브랜드를 자주 소비하는지에 따라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드러나고 나의 지향점이 드러난다. 당신이 자주 소비하는 브랜드는 당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주기도 하고, 자주 소비하지는 않더라도 당신이 강하게 선망하는 브랜드는 당신이 가지고 싶은 판타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조금 더 피부에 와닿게 말하자면, '파타고니아를 입는 사람', 혹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어 하는 사람' 같이 그 브랜드가 가진 페르소나에 따라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지향점을 예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브랜드는 정말 사치일까?
나는 국밥충의 한 명으로서 평소에 브랜드에 큰 가치를 주지 않았었다. 브랜드란 자본주의 세계가 설계한 허상 속에서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해 사치를 조장할 뿐,Brandless(브랜드가 없는) 제품이 더 합리적인 판단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사치라고 생각했던 브랜드는 보통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같은 이른바 명품이라고 불리는 럭셔리 브랜드였다. 특히 이케아 가방을 연상시키는 일명 '발렌시아가-이케아 백(정식명칭:아레나 주름 가죽 홀달)'같은 아이템이 주목받을라치면, 어김없이 '그거 이케아백과 다를 바 없는데 발렌시아가 이름값 때문에 사는 거 아니냐'며 국밥이론을 꺼내고 '그 돈이면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 n그릇 사 먹겠다'라며 그 제품이 가진 가치를 국밥코인으로 치환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잘 알고 있다. 세상에는 국밥으로는 치환되지 않는 분명한 가치가 존재하며, 국밥충을 자처하는 나 같은 사람도 어떤 특정한 아이템만은 가성비 없는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을 단순히 허상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
수많은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가 특정 브랜드를 콕 집어서 선택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그 브랜드가 우리가 '근본'이라 생각하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브랜드란 어디에 근본이 있는가의 문제다
브랜드는 소비자가 어느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근본'이 달라진다. Brandless 브랜드는 가성비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다. 제품의 심미적 가치보다는 '기능적 가치'에 더 집중하고 합리적인 가격대에 가장 가성비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것이 근본이다.
만약 Brandless브랜드에서 천의무봉의 완벽한 제품적 완성도를 찾거나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할 수 있는 심미적 가치를 찾는다면, Brandless 브랜드는 근본 없는 브랜드가 되기 쉽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브랜드로 인식되는 젠틀몬스터도 어느 측면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근본이 있는 브랜드가될 수도, 없는 브랜드가될 수도 있다. 젠틀몬스터가 가볍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안경은 아니기에 안경을 매일 쓰고 편안함과 가벼움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젠틀몬스터는 근본 있는 브랜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젠틀몬스터를 패션아이템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얘기가 달라진다. 젠틀몬스터는 누가 봐도 안경이 젠틀몬스터스럽기도 하고 그동안 놀라운 공간마케팅을 통해서 쌓아온 새로움의 정신이 제품에 생생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 새로움과 젠몬스러움을 멋으로 느끼는 사람에게 젠틀몬스터 안경은 패션아이템으로서분명한 근본이 있다. 이처럼 내가 근본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특정 브랜드는 좋은 브랜드가 되기도, 유명하긴 한데 근본없는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특정한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것은 단순히 제품만 소비한다기보다는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근본, 다른 말로는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특정한 가치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러한 소비를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지한다는 측면에서 '투표적 소비'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누군가는 이런 소비형태를 가치소비 혹은 미닝아웃이라 부를 테고, 심지어는 여기에 가치관을 담아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중 그 어떤 단어로 이러한 소비자들의 행태를 정의하든, 중요한 점은 '내가 긍정하는 가치에 나의 소중한 돈을 쓴다'는 사실이다. 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의 지갑이 가진 힘은 당신의 생각보다 더 크다
파타고니아를 사는 사람들은 환경에 영향을 최소하 하기 위해 '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이라고 외치던 파타고니아의 가치에 동감한 사람일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그런 행보를 근본 있다고 생각하고 투표적 소비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특정 브랜드가 네임벨류뿐만 아니라 재무적 측면에서도 과거보다 더 성장하고 있다면 이는 그 브랜드의 가치를 긍정하거나 선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커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눈 밝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브랜드 중에 대중까지 설득할 수 있는 훌륭한 브랜드는 더욱더 '유명한 브랜드'가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브랜드'라고 불리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당신의 지갑이 가진 힘은 당신의 생각보다 더 크다. 사실 투표적 소비라는 단어는 선뜻 부담될 수도 있다. 나는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가격 범위 안에서 내 마음에 드는 제품을 선택한 것뿐인데 뭔가 거대한 담론에 기반한 엄청난 혁명전사 같이 소비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한표 한 표가 모여 반장도 만들고 대통령도 만드는 것처럼 투표적 소비가 가지고 있는 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Brandless 브랜드든, 젠틀몬스터든, 파타고니아든 그 어떤 브랜드든 소비자들에게 더욱더 많이 투표를 받을수록 그 움직임에 동참하는 브랜드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내가 더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적극적으로 투표적 소비할수록 세상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
오늘도 잘 사셨습니까?
근본 있는 브랜드란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선명하게 밝히는 브랜드다. 그 가치가 반드시 친환경, 동물실험반대, 지속가능성, 공정무역 같은 윤리적인 가치일 필요는 전혀 없다. 젠틀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새로움'이란 가치도 충분히 훌륭한 가치이며, 소비자들이 젠틀몬스터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면 장기적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새로운 브랜드들의 등장으로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산속에서 자연인으로 완전자급자족의 삶을 살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특정한 브랜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브랜드를 '사는 것(Buying)'과 삶을 '사는 것(Living)'은 절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었다. 처음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글월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디올성수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부암동 찻집을 좋아하는지만으로도, 당신이 어떤 가치에 투표하고 있는지 또 하고 싶은지를 알 수 있다.
오늘도 당신은 투표하고 있다. 나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보다 더 큰 힘을 오늘은 어디에 쓸지가 너무도 궁금하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