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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 Mar 18. 2023

[오늘의 발견 01]

내 몸이 움직이는 범위

지난 4월 인가. 스트레칭을 하다가 허벅지 근육을 다쳤다. 격렬한 운동을 하다가 다쳤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안 다치려고 하는 스트레칭 중에 다쳤다는 게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몸이 '네 몸은 이제 낡아가고 있고, 예전처럼 쓸 수 없어,'라고 말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괜히 무시하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통증이 없으면 운동을 계속했다. 다행히도 (아니면 지금 생각해 보면 불행히도) 일상생활 속 동작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더욱 '운동만 조심히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9월. 악 소리를 내며 넘어진 채 더 이상 운동 동작을 견딜 수 없게 된 허벅지를 꾹 누르며 병원에 간 뒤 3~6개월은 운동을 하지 말라는 선고를 받았다.


다시 돌아온 3월. 이제는 움직여도 되겠다 싶어 다시 돌아간 체육관에서 두 번째 동작만에 또 두둑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오늘의 일이다.


꼭 그런 운동을 해야겠냐는 의사 선생님의 질린다 싶은 눈빛이 다시 떠오르며 체육관 구석에서 허벅지를 꾹 누르고 앉아 있었다. 12살부터 맨 땅에서도 연속해서 휙휙 돌던 옆돌기는 이제 허벅지 통증과 맞바꿨다. 12살의 내가 내 몸에서 빠져나간 것 같다. 내 생이 얼마가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벌써 정체되는 몸과 이제는 투쟁하지 않고 화해할 때가 온 것 같다. 체육관에 앉아서 내 몸의 가동범위를 하나하나 체크해 보았다.


다친 왼쪽 다리는 정면으로 쭉 펼 수 있다. 그러나 발목을 돌려 서거나 측면으로 뻗으면 허벅지 근육에 정이 박힌 듯이 그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 허버지 앞 근육을 늘려 뒤로는 다리가 쭉 뻗어진다.

오른쪽 다리는 운동은 쉰 만큼 굳어 있다. 정면으로 쭉 펼 수 있지만 바닥에 손을 짚으면 무릎 뒤가 아파서 숨을 계속 내쉬어야 한다. 측면으로 벌어지는 각도도 20도는 줄어든 것 같다. 물론 왼쪽 다리를 못 펴고 오른쪽만 해서 20도지, 양쪽 다리를 찢으면 그마저도 안될 것이다. 뒤로는 쭉 펴진다.

라운드숄더가 심해진 어깨는 이제 한 바퀴를 돌리려면 두 번의 턱턱 걸리는 구간을 만나야 한다. 심하게 수축된 명치 부근의 근육이 어깨를 돌릴 때마다 아파서 종종 담이 걸리기도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들어와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는 데에도 다친 근육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 꼬는 다리가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었다면 자연히 다리 꼬는 습관도 고쳐졌을 것 같은데 아쉽다.


앞으로의 날은 내 몸이 오늘 적은 범위보다 더 적게 움직이는 날들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다리를 펴고 선채 매던 신발끈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거나 발을 계단에 올리고 매야 할 것이고, 허리를 살짝 돌리고 팔을 뻗어 집어오던 책상 뒤쪽의 물건들도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걸어간 뒤 챙겨야 할 것이다.


내 몸의 가동 범위가 줄어드는 것은 이 세상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것만 같아 서글펐는데 오히려 두 배는 더 움직이고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를 물고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나는 나이 듦에 대해 마주할 자신이 없었는데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부담까지 얹힌 기분에 도망치려고 발버둥 친 것이었나 보다. 화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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