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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미 Jan 01. 2022

대입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서울대학교 아로리 웹진 - 교육계 이슈이슈

누구세요?


고등학교에 방문해서 학생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간 선생님이 “선생님, 오늘 한 학생이 저한테 이런 질문을 했어요.” 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혹시 교수님이에요? 입학사정관이에요? 아니면 공무원이에요?”

처음에는 다소 무례한 듯 당혹스러운 질문으로 느껴졌으나, 대화의 맥락을 들어보니 학생은 그저 자신을 잘 살피고 진심 어린 질문을 해주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 궁금했던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학교 선생님께서 교육청에서 대학입학지원관이 방문하여 상담을 진행한다고 이야기를 전했겠지만 이제야 ‘입학사정관’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고등학생들에게 ‘대학입학지원관’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일 것입니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에게도 그렇고 학부모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강연장에서 사회자가 대입지원관을 ‘입학사정관’으로 소개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대학입학지원관의 시작은


서울, 경기, 인천과 같은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에 대입과 관련된 올바른 정보가 전달되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령 수능위주의 대입전형에서 학생부위주의 대입전형으로 변해갈 때, 학교 현장에서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최근까지도 수능체제의 학교 수업으로만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학생부위주의 대입전형을 준비하는 학교에서 수업과 평가 그리고 기록의 사이클이 연계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대입전형에 대한 오해나 정보 부족으로 인해 합격사례가 없는 경우에는 대학 지원과 합격 그리고 학교의 진학지도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학교 내에서 몇 년간 합격사례가 나오지 않는 경우 이러한 학습효과는 더욱 굳어집니다.

아마도 이런 부분에 대한 고교현장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올바른 대입 정보를 제공하고자 각 지역의 교육청에서는 대입에 관한 전문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대학입학지원관’으로 채용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대학입학지원관은 지역 내의 교사, 학생, 학부모들에게 대입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자료를 개발하고, 교사 연수·학생 상담·학부모 설명회 등을 운영합니다. 지역마다 운영방식이나 내용의 차이는 있겠지만 목적은 같을 것입니다. 현재 대학입학지원관은 강원을 시작으로 제주, 대구, 경북, 광주, 전남, 부산 등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어왔습니다.


입학사정관에서 대학입학지원관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지난 10년간 입학사정관으로 일하면서 전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수없이 만나왔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고등학교에 방문하거나 교육청 설명회나 박람회를 통해서 또는 대학 내 상담을 통해서 학생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리고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이 학생들이 제출하는 서류로 혹은 대학의 면접이나 논술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재학 중인 고등학교부터 대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까지 모두 제각각 다른 학생들이지만, 대부분은 우리 대학에 지원하고자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입학사정관으로 일하는 해가 거듭될수록 학교와 교실의 시간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였고, 교사의 말과 학생의 말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정보들은 입학사정관인 저에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 힘을 소진하면 다시 채우고, 그렇게 채운 힘을 또다시 소진하면서 대입에 관한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입전형을 설계하고 분석하고 연구하고 평가해온 시간이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대학입학지원관으로 학생을 만나는 일은 또 다른 시간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한 지역의 학생들을 폭넓게 그리고 좀 더 현실감 있게 만나는 일은 그간 입학사정관의 자리에서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봐왔던 것과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대학에 모이는 전국의 고등학생
한 지역에서 전국의 대학으로 지원하는 고등학생


“선생님,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고 자기소개서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경영학부가 있을까요?”
“국립대 중에서 제 점수로 지원 가능한 대학이 있을까요?”

대학에서 일하면서 지원 학생들이 비슷한 대학들의 대입전형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전국 모든 대학의 대입전형과 모집요강을 세세하게 살펴보아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입학지원관은 특정 대학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학의 모든 계열과 전공의 전형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한 명의 교사가 담임하는 학생들이 25명 남짓이라고 가정했을 때, 25명이 비슷한 진로 방향과 학업성취도를 보이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학급이 하나의 학교가 되고, 그 지역의 여러 학교 학생들이 모이게 되면 같은 길을 가도 제각기 걸음새가 다르고, 속도가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학생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라는 분야를 대학에서 전공으로 선택한다면, ‘에너지학과’라는 명칭이 딱 들어맞는 전공 외에도 바이오, 반도체, 환경 등과 연계된 학과들이 대학마다 학사의 특성에 맞추어 개설되어 있다는 점도 잘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학생과의 상담을 통해 관심 분야를 조금 더 확대하거나 조금 더 구체화해서 관심 분야나 진로의 방향과 연결하여 대학의 전공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반면, ‘간호학’은 많은 대학에 거의 동일한 명칭으로 개설된 전공입니다. 대한간호협회 2019년 자료에 의하면 전국 간호교육기관 수는 203개(대학알리미, 대학·전문대학 신입생 충원현황 학과별 자료, 국군간호사관학교 제외)입니다. 간호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상황에 따라서 대학과 전문대학이 요구하는 기준 등을 고려해서 적절한 대학을 추천해주어야 합니다. 가장 난감한 상황은 관심 분야나 진로에 대한 의지가 없는 학생을 만날 때입니다. 아직 관심사나 진로 방향을 찾지 못한 학생을 만나 지난 학교생활을 바탕으로 지원해볼 수 있는 대학과 전공 그리고 대입전형을 함께 찾아가는 일은 꽤 힘에 부치는 과정입니다.

한 대학의 대입에 관한 모든 사항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것과 전국 대학의 대입에 관한 모든 사항을 그려나가는 것은 중요도를 떠나 그간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으로 일하며 사용했던 에너지와 시간과는 또 다른 종류의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입학사정관으로 일할 때는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 한 대학을 중심으로 주요 대학과 특정 학과 등에 대한 경쟁률을 바탕으로 대입의 흐름을 이해했다면, 지금은 주요 대학과 지역국립대, 전국 대학의 지원 결과를 바탕으로 큰 파도가 지난 뒤 따라오는 작은 파도들까지 좀 더 세심하게 살펴봐야하기 때문입니다.


대학과 고등학교, 각자의 사정
이해할 수 있지만 모두 알 수 없고, 안다고 하더라도 달라지기 어려운 것


입학사정관으로 일하면서 수없이 들었던 질문은

“이 아이가 합격이 가능할까요? 이 학교생활기록부는 어떻게 평가될까요?”입니다.

1년 이상 학교에서 학생들과 하루 대부분을 함께 하는 교사는 학생들의 대학 당락에 따라 학생들과 함께 웃고 울게 됩니다. 평가와 선발을 하는 입학사정관으로서는 객관적으로 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입장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이 학교 현장과 교사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 역시 입학사정관이 학교 현장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입장이 다를 뿐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 중 하나는 학생들의 선택권과 관련된 것입니다. 예전과 달리 현재 고등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학생들은 학습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게 됩니다. 교과목을 선택하고, 동아리 활동 등 본인의 진로 탐색을 위한 많은 활동을 선택하게 됩니다. 문제는 학생들의 선택과 원하는 결과가 같지 않을 때가 많고, 선택의 범주도 제한적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선택권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수험생들에게는 지나간 고등학교 과정의 시간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학교 교육의 본질은 학생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제한된 시간과 여건 내에서 학생들이 더 의미 있는 학습 경험과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사는 수업을 설계하고 평가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학생이 서있는 출발지점은 학교마다 다르고, 같은 학교 안에서도 학생마다 너무나 큰 차이가 납니다. 예전보다 교육격차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 차이를 0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문제보다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교사는 각기 다른 한 학급의 아이들을 공정하면서도 평등하게, 평등하면서도 결과의 차이를 보이게 드러내야 하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수업 외에도 학교 내에서 학생의 모든 생활을 파악하고 관리해야 하는 일들이 경중을 가리지 않고 무척 많다는 점입니다. 안타깝게도 학교라는 조직 내에서도 교사 개인 간의 차이가 있고, 학교라는 곳도 저마다의 차이가 있다는 점은 아직 유효합니다.

좋은 수업을 위한 많은 교사의 노력이 학교생활기록부에 모두 담기지 못할 때도 있고, 수업을 들은 한 학년도의 모든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결과를 기록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또 이런 노력이 학생들에게 즉각적으로 좋은 결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대입에서도 유의미한 차이를 가지지 못한다고 느낄 때 교사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입의 현장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대학과 고등학교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학사정관의 경력이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해도 고교 교사가 학급과 학교의 수업을 설계하고 평가와 기록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동시에 고교에서 진학지도를 아무리 오래 했다고 하더라도 입학사정관으로서 한 학생에 대해 여러 평가 주체가 다면적으로 평가한 결과를 연구하고, 수많은 지원서류를 상대적으로 평가하고 선발하는 과정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육과정과 대입의 방향이 서로 엇갈려 있는 지금
고등학생이 대학의 필요성과 공부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 이유


수시와 정시의 비율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대입과 관계된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결국 학생입니다. 많은 기회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대입과 연계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느껴집니다. 고교학점제와 개정 교육과정의 변화 방향이 지금 대입의 방향과는 확실히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차라리 단순했으면 좋겠다’든지, ‘대학이 좀 더 단호한 태도를 보여서 대입전형의 뚜렷한 색을 취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학 역시 정책에 따라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난처한 상황입니다.

가끔 중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고입설명회 자리에서 대입에 대한 안내를 요청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중학생이든 중학생의 학부모이든 모두가 갖는 대입에 대한 관심은

‘우리 아이가 어느 대학에 지원하려고 할 때, 어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인가?’

입니다. 혹은 유불리를 논하지 않을지라도 대입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도를 높이는 시간이라는 것에 의미를 둘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빨리 대입에 대한 정보를 접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입에 대한 이슈가 끊이지 않는 지금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학생이 ‘대학’이라는 곳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EBS 문제집 앞뒤로 나오는 대학 광고를 보면서도 거리에 간판을 보듯 무신경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이유가 없는 학생들은 공부의 의지도 대학의 필요성도 찾아보지 못한 채 어느새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이 되어갑니다. 3학년 학생들의 상담 과정에서 적지 않게 만나는 학생은

“선생님, 저 어느 대학까지 갈 수 있어요? 이 학생부로 학종 지원이 가능할까요? 교과전형은 못쓰는데.... 수능공부 이제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이 전공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런 막연하고 방향이 없는 질문을 합니다.

대학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에게 대학이 정답은 아니라는 점, 예전과 달리 대학졸업장을 특별한 능력으로 환원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학을 통해서 또 다른 인생을 맞이하게 될 우연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학의 필요성 혹은 대학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보고 그보다 더 중요한 ‘나’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학생들에게 필요하다면,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대학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의 교육이 어떤 과정인지, 무엇을 해볼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기회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상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 어떤 교과목을 선택하고,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교육에 관한 이슈들이 끊이지 않는 요즘,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은 ‘대입’의 유불리로 귀결됩니다. 교육의 중심에 서 있는 교사는 대입에 종속되는 고교교육의 현실에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과 교육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학교와 교사가 있음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교육제도와 대입제도가 뒷받침되어서 학생들이 스스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학교 교육이 일궈지기를 바랄뿐입니다.


http://snuarori.snu.ac.kr/renew/participation/issueAll.php?at=view&idx=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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