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2018, tvn)
구한말, 망국의 역사를 쉬이 풀어내는 드라마는 여태껏 없었다. 미스터션샤인을 보면서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를 깨닫는다. 아무리 역사가 스포라지만, 저 인물들이 하늘이 주신 제 명까지 산다해도 독립을 보기 힘드니 시간이 갈수록 희망이 점차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그들이 살아 남길 바랐다.
헛된 희망에도 불구하고 결국 많은 이들이 죽었다. 유진, 동매, 희성, 양화, 함안댁, 행랑아범, 장포수, 고사홍대감, 홍파, 황은산 도공...더 많은 이들이 모두 죽었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매번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남으라했다. 살아 남으라는 그들의 간절한 바람은 왜 기어코 자신을 향하지는 못했을까. 내가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인가, 선택의 순간에 그들도 그런 생각을 안 했을리 없을 텐데. 그들은 애신을, 조선을, 조선의 미래를, 죽음으로써 살렸다.
한참을 생각해도 여전히, 그들의 기꺼운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마지막 순간, 애신을 보고 웃던 유진과 이만하면 되었다는 동매와 그들과 하나라면 영광이라는 희성과 다 살리려고 그랬다는 함안댁과 화려한 날들만 역사는 아니라는 황도공을 비롯한 그 의병들을. 지금을 사는 이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도, 감히 이해한다고 해서도 안되는 일 같다. 그러나 다만, 함께 사는 일이 함께 죽는 일보다 어려웠던 시대에, 그 시대를 온 몸으로 나아갔던 그들의 선택이 참혹하고 구슬픈 만큼 고귀하고 위대할 뿐이다.
밥은 먹고 다니는지, 하는 일은 잘 되어가는지, 가족들도 다 잘 지내는지. 구한말의 사람들은, 특히나 의인들은 서로에게 그런 일상적 안부를 궁금해할 수 없다. 그들이 애달프게 궁금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직 살아 있음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철인은 아니어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 좋고, 사랑하는 이를 보면 웃고, 봄바람에 설렌다. 야속하게도 신은 그들에게 무참한 시대를 살게하면서, 여전히 인간다움을 잃지 않게 한다. 의인들은 어쩌면,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들이었다기 보다는 외려 그저 인간다운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아만 있으라는 애끓는 당부 속에 그들이 원했던 것은 그저 평범한 삶, 일상적인 안부였을지도 모른다.
애신은 눈물로 고백한다. 늘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는 상상을 했다고. 그럼에도 그 걸음이 결국은 다 제자리로 돌아오더라고. 그 이유는 일식이 이야기한다. 잘 살고 있었는데, 도무지 밥이 넘어가지 않더라고. 그들이 총을 들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것 하나일 것이다. 밥이 넘어가지 않아서. 안부에 제대로 답할 수가 없어서. 그러니 안부를 물을 수도 없어서. 조선인들의 눈물을 그저 볼 수가 없어서. 사랑하는 이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어서. 그러니 모든 평범했던 이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총을 든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위해 총을 든 것이다. 뭐라도 해야했으니까. 그것이 곧 애국이 된다. 조선의 사람들을 지키는 것, 그것 말고 조국을 지키는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그들의 인간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이길 용기를 함께 주었다. 삶을 위해 죽어야 하는 이 모순과 역설의 시대에, 그들의 선택은 삶이라는 찬란한 기적을 지키고, 그 기적이 조국을 지킨다.
유진은 사랑하는 애신을 지키고, 함안댁과 행랑아범, 황도공을 비롯한 어르신들은 젊은 조선의 미래를 지키고, 장포수는 하나라도 더 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지키고, 양화는 수미의 안전을 당부하고, 희성은 윤기자에게 다음 기록을 맡긴다. 그리 죽음을 딛고 살아 남은 모든 이들이, 조선을 지킨다. 그래서 애신은 수많은 죽음을 건너 살아남는다. 그 죽음들만큼 무거운 걸음이겠지만, 그만큼 쉽게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일 것이다. 그리고 계속될 조선의 역사에서 애신 역시 수미와 도미 같은 조선의 미래들을 위해 죽음을 무릅쓸지도 모른다. 그런 선택들로 이어져온 역사니까.
이 드라마를 보며 위인전과 역사책에 갈음된 수많은 분들의 의로운 마음들 뒤에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바람들이 숨겨져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그들이 간절히 원한 것은 그저 사랑하는 이들과의 평범한 안부 인사였음을 생각한다. 누구보다 평범하길 원해서 너무나 특별한 길을 걸어야 했던 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그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준 미스터션샤인에게도 감사할 따름이다.
뜨거운 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굿바이, 미스터션샤인
독립된 조국에서 씨유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