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우리에게 필요했던 진짜 어른들
힘들고, 길고, 지난했던 2016년이 끝나간다. 2016년이 끝나도 끝나지 않을 싸움도 계속 되고 있다. 마치 2016년에 우리에게 닥칠 일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2016년의 시작, 중간, 끝에 우리를 찾아온 진짜 어른들이 있었다.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조들호 변호사, <낭만닥터 김사부>의 닥터 김사부가 그들이다. 정의와 정도를 잃어버리고 하염없이 비틀거리는 시대. 모두가 떠나지 못해 사는 것처럼 보이는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브라운관에 있었다.
그들은 특별했는가?
죄를 지었으면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게 죗값을 받게 해야죠! 그게 우리 경찰이 해야될 일이지 않습니까!
이재한과 조들호와 김사부를 보며 가슴이 뛰다가도, 정말 저런 사람이 있을까 한숨이 나왔다. 그런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사실 그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한 일이라곤 자신이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한 것 뿐이다. 어떻게 그렇게 정의로울 수 있느냐고 그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입을 모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답할 것이다. 형사는 범인 잡는게 일이다. 그래서 이재한 형사는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변호사는 법 앞에 평등하게 사람들을 변호하는 게 일이다. 조들호는 약자라는 이유로 법 앞에서 불평등했던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변호했다. 의사는 사람 치료하는 게 일이다. 닥터 김사부에게는 '살린다'라는 원칙 이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자기 직업의 본질을 추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현실에 저런 형사, 저런 변호사, 저런 의사는 없다고 말한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불가능한 세상이라니. 그래서 드라마 속 이재한과 조들호와 김사부도 계속해서 한계에 부딪힌다. 이재한은 죽음을 맞았고, 조들호는 검사 옷을 벗었고, 김사부도 병원에서 쫓겨났다. 그들에게 일을 주었던 그들의 조직은 그들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인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
우리는 침묵을 하면 모두 가라앉는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침묵하는 분들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침묵은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세 사람이 가진 공통점은 딱 한가지였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질 모든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하고,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래서 그들은 타락하고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군계일학이자 동시에 눈엣가시인 별종이 되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별종이 되어서 그들이 세상을 바꾸었는가. 아니다. 여전히 불합리하고, 불의로 점철된 세상이 득세하고 있다. 그러나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지는 않다. 이재한은 박해영을, 조들호는 이은조를, 김사부는 강동주와 윤서정을 자신과 같은 별종으로 만들었다. 그런 별종들이 많은 세상만이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다. 한 명의 별종은 내쳐지지만, 수많은 별종은 중심이 될 수 있다.
진짜 어른이 필요한 시대
열심히 살려는 건 좋은데 못나게 살진 맙시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는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별종의 중심이 되어줄 이재한, 조들호, 김사부가 필요한 시대다. 아주 요원한 소망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올해 끝없이 절망했지만 그만큼 희망도 보았다. 우리 사회에도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명 있다. 자신의 일을 제대로, 올바르게 하는 모든 사람이 곧 이재한, 조들호, 김사부이다. 다만, 그들이 그 어떤 불이익과 장애물 없이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함께 견디고 버텨야 한다. 모두가 별종이 되어, 더 이상 별종 취급을 안 받는 시대, 이재한과 조들호와 김사부가 당연한 시대가 오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용기를 가진 진짜 어른이 되기를 2016년을 보내며 간절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