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눈이 내렸습니다. 주차해 둔 차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가 가로등 어스름한 불빛에 휘날리는 눈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은 '옛사랑'의 가사처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했습니다. 맞은편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은 밖으로 나와 놓아 둔 생수병 위의 눈을 텁니다. 골목길에서는 누군가가 열심히 비질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입니다. 각자의 일상의 고단함과 추위와 포근함, 기대와 좌절이 눈처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하는 또 하나의 계절이 거리 위에 쌓이고 있습니다. 오늘 밤은, 당신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언젠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요. 인간이라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저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존재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생각은 늘 실패로 끝납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서 지금 저는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존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냐고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합니다.
사실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늘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매번 새롭게 깨닫기 위해 소설을 읽고 공부하는 편에 가깝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나의 세계는 얼마나 작고 좁은지. 나의 눈은 아주 가까운 곳밖에 보지 못하고, 나의 언어는 늘 아주 일부밖에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요. 소설을 읽으며 타인의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나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의 세계가 여전히 좁으리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저에게 좋은 소설이란, 읽고 나서 한동안 침묵하게 되는 소설입니다. 타인의 삶에 대해, 세상의 불가해한 일에 대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 것. 그래서 이야기는 언제나 저를 붙들어주는 존재지요.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울까요. 무수한 철학자들도 타자를 논하고, 타자의 윤리를 논하고, 주체와 타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불가해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어려운 말들보다 적확하게 그 이유를 담아내는 건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지요. "남의 다리가 부러져도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슬프게도 인간의 감각은 오로지 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생의 무수한 감각은 내 것이기에 너무 생생한 반면, 타인의 감각은 아득히 멀어져 있습니다. 당장 나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느끼는 것은 어떠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게는 그 노력이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마주한 타인이 나와 같은 고통, 기쁨, 슬픔, 행복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되새깁니다. 그러므로 내가 경험하지 않은 고통에 대해서 토로하는 이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것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섣불리 공감하지 않습니다. 나의 삶과 나의 감정이 이토록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기에, 타인의 그것 또한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나의 삶을 대하듯, 타인의 삶을 대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물론 매번 그것은 실패합니다. 그러니 나는 언제까지고 당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애초에 나는 나이지, 당신이 아니기에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그렇게 끝없이 실패하면서,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당신의 안부를 묻고, 당신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잠깐, 나와 당신의 마음이 통하는 공명의 순간이 오기도 하겠지요. 소설을 읽다가, 문득 심장이 툭, 하고 떨어지는 그런 문장을 만났을 때처럼요.
저를 침묵하게 만드는 작가 중 하나인 김연수 작가는, <세상의 끝, 여자 친구>라는 소설의 '작가의 말'에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어쩌면 날은 춥고, 되는 일은 없고, 몸은 고단하고, 마음은 무거운 밤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감히 그 고단함을 위로하기 위한 어쭙잖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나와 나의 하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당신에게도 가 닿길 바랍니다.
서툴렀지만, 오늘도 역시 귀한 당신의, 아주 귀한 하루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