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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님 Feb 15. 2023

드라마 같은 이혼은 없다.

다시 혼자가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결혼생활의 끝이 가장 고통스러운 외도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외도 증거 사진으로 갤러리에 저장되어 있는 그 두 사람의 사진들과 우리가 사랑했던 그 시간의 사진이 함께 공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어떤 것이 정말 진짜였을까. 이중에 진짜가 있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토록 사랑했고 또 사랑했는데.. 왜 날 마음에서 놓았을까. 


드라마를 보면 상간녀에게 물을 퍼붓고 싸대기를 때리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또는 협박을 한다거나 헤어져 달라고 하거나 회사를 찾아가 머리를 뜯거나.  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 폭행죄로 내가 고소당할 수 있으며 상간녀소송 시 불리해지니까. 눈물을 머금고 두 사람이 하는 그 거짓말들을 잠잠 코 듣고 있어야 하고 고통스럽고 죽고 싶지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증거를 하나둘 모아야 한다.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 사람이 대한 불신, 송두리째 빼앗긴 가족이란 울타리와 내 인생. 그걸 생각하면 상간녀소송은 정말 보상이 눈곱만큼도 되지 않고 오히려 비용부터 내 시간을 쓰는 일까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왜 간통죄를 없앴는지 이해가 안 가는 날들이다. 


심지어 나는 그 사람과 다시 살기위해 상간소송을 포기하고 합의를 선택했다. 결국 이렇게 될거였다면 차라리 소송이라도 할걸 그런 생각들이 차오른다. 하지만 그것 또한 돈이 많아야 가능하다는 게 참 씁쓸하다. 소송을 이길 수 있을지도 얼마나 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변호사비용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는 전업주부들도 정말 많다. 참 세상이 그지같이 돌아간다. 나는 전업주부는 아니었지만 소송비용에 쓸 돈에 대한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그 여자와의 싸움속에 내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 여자는 나에게 돈 몇푼 준걸로 평범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중이지만. 


상간소송이나 합의를 해도 이혼준비를 해도 외도로 인한 불행은 끝이 나지 않는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머릿속에 그 두 사람이 뒤섞여 있는 모습들을 상상하고 함께 찍은 사진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리. 잊어야 한다고 그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잊고 나도 잊고 잘 살아가겠지만 피해자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정신과를 다니는 사람,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사람, 대인기피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고통받아야 할 두 사람은 잘 살지만 피해자는 그게 쉽지 않다. 사람을 다시 믿는 것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두렵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차라리 속이 시원하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게 많이 힘에겨워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 역시 아마 회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그만큼 사랑했고 믿었었으니까. 


외도를 했다고 사랑했던 시간들이 사랑하는 마음이 한순간에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껍데기라도 안고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한심하다고들 하겠지 정말 바보 같다고들 하겠지. 나도 늘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이혼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해한다. 나도 한동안은 그랬으니까. 결혼하는 순간 아니 그 사람을 만난 순간부터 그 사람 없이 사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내 삶에 그 사람을 빼놓고 미래를 그려가 본 적이 없어 두렵고 무섭고 비참하면서도 나를 많이 사랑해 줬던 그 사람을 껴안고 놓을 수가 없어서. 처음엔 잘 못했다 빌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는 그 말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조금은 안고 지옥 속에 날 밀어 넣었으니까. 마지막은 결국 미안한 마음 말고는 아무것도 감당하며 살 수  없다는 걸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매일 나던 눈물도 이제 가끔 난다. 남편 때문이 아닌 내 인생이 불쌍해서 그리고 자꾸만 자책하는 마음도 생긴다. 지난여름 맞벌임에도 불고하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지쳐 내가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냥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면 우린 가끔 투닥거리긴 하겠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진다. 내가 조금만 더 참았다면 하는 생각. 아마 이렇게 이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서겠지. 바보처럼. 외도한 건 어떤 이유에서든 내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내 그 찰나의 선택들을 자책하게만 된다. 그전까지 크게 문제는 없었으니까. 어쨌든 날 두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진 않았으니까. 참 한심한 생각뿐이다. 


그리고 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잘해주셨던 시부모님께 죄송스럽다. 남편의 잘못을 사죄하시고 남편과의 부모관계를 끊으시면서 나에게 끝까지 너의 삶을 살라고 응원해 주신 두 분. 잊지 못할 거고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나에겐 사랑이 전부였는데 그 사랑을 놓아버렸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나에게 열정적인 사랑이었던 사람도 이렇게 한 순간 배신했는데 그 누구를 내가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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