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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가르타 Apr 25. 2016

비행기를 놓치다

교훈 없는 불운들에 관하여

떠올리기만 해도 불편할 뿐인 굴욕적 경험 속에 손톱만큼의 교훈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흑역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해봐도 좋을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분명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정말 쓸데없고 그것이 가진 숨겨진 뜻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떤 지독한 경험을 두고 하는, 앞으로 닥칠 수도 있는 나의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한 필연이라는 따위의 억지 위로가 모든 경우에 통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그 흑역사는 아무런 하찮은 의미조차 없다.


그러한 종류의 흑역사로 최근 나는 여동생과의 싱가포르 여행을 위한 비행기를 놓친 일이 있었다.

그 날 인천공항에서의 멍청하고도 어처구니없었던 모든 상황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지만 이미 내가 싱가포르 여행길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지인들이 ‘잘 도착했어?’하는 문자들을 연달아하는 통에 여행이 취소된 정황부터 설명해야 했고, 그 뒤에 이어지는 항공비 수수료는 얼마나 물었으며 호텔비 환불은 받았는지 등의 질문세례에 답변을 일일이 하다가 영혼이 털려버렸다.



인천공항을 다시 빠져나와 돌아오는 리무진 안에서 반쯤 영혼이 나간 여동생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여기가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야. 지금 이게 맞아.’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우리는 모든 의욕을 상실하여 다음 날 출발로 미룰 수 있었던 여행을 수수료를 감수하고 포기해버렸다. 우리가 감수한 것이 그 뿐이라면 좋았겠지만 우리에겐 환불이 불가한 프로모션 호텔도 있었다.


그 당시 느낀 나의 감정은 ‘상처 입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그 상처의 종류란 우리가 입어야 했던 금전적인 손실보다도 말로만 들어왔던 이토록 스케일 큰 실수를 우리가 저질렀다는 자괴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우리는 버스도, 기차도 아닌 비행기를 놓쳤다. 그것도 느긋하게 샌드위치를 먹다가.


비행기 탑승수속을 마쳐야 할 시간에 우리는 느긋하게 샌드위치를 즐겼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위로가 된 한마디는 친구의 ‘박보검도 꽃보다 청춘에서 비행기 놓쳤어’였다. 유명 연예인도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한다는 점이 꽤나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은 순간 패닉 상태에 빠져 정신줄을 놓고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고, 이따금 비명이 터져나오려는 걸 억제하기도 했다. 다시 리무진을 예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귀갓길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때만큼은 인천공항 특유의 쾌적함과 럭셔리한 분위기를 상실한 채 입국심사원의 한치의 자비도 없는, 냉정한 표정과 같은 무겁고 싸늘한 공기만이 감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느니 차라리 공항 안을 떠돌고만 싶었다. 여행에 대한 미련은 이상할 만큼 없어서 쉽게 포기했지만 나의 멍청한 실수를 증명하는 집안의 공기를 맞닥뜨릴 자신이 없었다. 싱가포르의 무덥고 화창한 거리에 있어야 할 그 시각에 내가 쾌쾌하고 어두운 집안에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내 실수에 대한 가장 완벽한 확인사살이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온 나는 해외에서 장기체류라도 하다 온양, 흔하디 흔한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의 한 동네 길거리가 낯설고 새롭게 보이는 체험을 했다. 오전까지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그친 뒤 쌀쌀한 공기가 거두어지고, 부쩍 코앞으로 다가온 여름의 따가운 햇살과 더운 공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공항에서의 일은 하루 내내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의 충격을 주었고 공항을 다녀오기 전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듯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비행기 탑승 불가 통보를 받은 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도 술은 좀처럼 먹지 않고 버텼던 내가 비행기를 놓친 한심한 사건 이후, 맨 정신으로 하루를 내내 버틸 자신이 없어 술 약속까지 잡았다. 술에 취해 알딸딸해지니 알코올의 위력을 실감했다. 취해있던 그 시간만큼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취기에 의존해 겨우 잠들었지만 새벽 세 시경에 절로 눈이 떠졌고 다시 공항에서의 생생한 상황이 코앞에 다가오는 바람에 맑은 정신으로 잠을 설쳤다. 자다가 이불을 걷어찬다는 경우가 다름이 아닌 이런 경우였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동생은 집에 도착하자 서러움이 폭발해 울었다고 한다.


아직도 나는 그 꿈같은 일을 떠올리며 피식피식 웃는다. 이 일이 준 긍정적인 부산물을 구태여 찾아내야 한다면 내 지인들은 그 일화를 두고 ‘역대급’이라는 수식을 기꺼이 붙여주었고, 나 역시 자신을 희극 속 주인공 삼아 그 일을 떠들곤 한다는 것이다. 충격에 대한 방어기제였는지 나조차도 한동안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며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긍정적인 결과가 있다. 이 여행은 애초에 실연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발버둥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여행 뒤에 더 허탈해질 마음이 내심 걱정되기도 했었다. 단적으로 이 여행의 목적은 순수하게 여행을 즐기기 위함이기보다는 도피였던 셈이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온 후에 예상되는 효과 이상으로 여행을 못 가게 된 충격적인 사건이 전 남자친구의 존재를 잊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실했던 여행의 부푼 꿈이 살아나고 있다


이 경험으로 두 번 다시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얻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만큼의 손해를 입고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분명 아니었다. 사실 꼭 해야 할 필요까지는 없는 경험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생은 그런 일들 투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운이 나빴던 일에 대해서 교훈적이거나 필연적이라고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럴 수는 없다. 사실 대부분의 부정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까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건강한 자아를 갖는 것처럼 사람이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불운한 사건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애써 있지도 않은 교훈과 철학을 찾아보고려고 하기보다는 ‘삶이기에 있을 수 있는 불행이다’하고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2016. 4. 22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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