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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가르타 Aug 06. 2018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는 것

후회 없도록

어떤 이별은 자존감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어떤 이별은 비교적 견딜만하다. 또 어떤 이별의 고통은 뒤늦게 찾아온다. 화를 못 이기고 충동적으로 했던 이별, 상대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서 하게 된 이별, 상대의 변심으로 하게 된 이별, 서로 좋아하지만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던 이별 등, 연애가 만나는 상대에 따라 다른 색깔이듯, 이별도 저마다 다른 형태인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서로 좋아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관계는 안정적이었다. 여느 커플들처럼 가끔 다투었고 그것은 헤어질 정도의 문제는 되지 않았다. 가끔 그 사람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은 나를 1분 안에 풀어줄 수 있었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우리는 서로 아낌없이 주고 계산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100% 완벽한 커플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 만족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과 함께인 미래를 그렸다. 그 사람과 더 오래도록 함께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 사람은 언젠가 떠나야 할 운명이었지만 언제나 내게 계속 머무를 수도 있다는 희망을 줬다. 그 사람 또한 나를 좋아한 만큼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을 안다.

그러나 서로 어느 정도는 시한부적인 연애가 될 수 있음을 각오하고 만남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함께하며 그것을 점차 망각해갔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른 나라로 떠나야 했을 때,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질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이별은 내가 예기치 못한 때에, 내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


떠나는 사람은 남겨질 사람에게 이별을 말해야 했다. 그 사람은 사랑했던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또 미안하다고 작별인사를 했지만 아무리 예쁜 마음이 담긴 말이었더라도 좋아했던 사람을 통해 듣는 마지막 인사는 눈을 똑바로 뜨고 마주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하는 그 작별인사는 나를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그 사람 스스로를 위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 사람이 떠나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계속 안정적인 연애를 유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의 상황을 이길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사랑이 강력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때의 상황은 그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나는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우리는 서로를 포기하기를 택했다.


나는 그 사람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사람에게 여기 남아있을 이유라곤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헤어져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 사람을 위해 나의 욕망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더 두렵고 힘든 일은 나를 포기하는 그 사람을 보는 일이었다.


왜 그런 상황에서 나와 연애를 시작해서 나를 힘들게 해야 했는지에 대해 그 사람을 원망하기도 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이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원망스러워서 그 사람의 작별인사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새벽에 깨어나 문득 그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가슴이 사무쳤다. 그 사람이 아니라, 나의 상황과 환경 때문에 내가 그 사람에게 이별을 통보해야 했다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그 사람을 보내주기로 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나에게 미안해하지 말라고, 나는 너와 만난 걸 후회하지 않고 널 원망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답장은 하지 말아달라고.


그래도 내가 손쓸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이별에 대해 나는 큰 타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이틀 정도를 울고 난 후로는 눈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식욕도 여전하고 잠도 잘 잔다. 어쩌면 여전히 남아있는 희망이 나를 한시적으로 덜 아프게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 사람이 비행기로 열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우연한 만남에 대한 기대를 가슴 한편에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희망을 잃고 체념했을 때에야 비로소 겪을 진짜 상실의 고통이 아직 남아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두렵다.



2018. 8. 6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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